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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양성 요람’ 한국삼육중.고등학교 110년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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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mail protected] 입력 2016.10.2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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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명학교 계승한 전인교육, 태동부터 미래비전까지...
재림교회 최초의 중등교육 기관으로 설립한 순안 의명학교를 계승한 한국삼육중.고등학교가 이달로 개교 110주년을 맞았다.
1904년 5월, 하와이 노동이민길에 올랐던 이응현과 손흥조는 일본 고베에 잠시 머무는 동안 쿠니야 히데 당시 전도사를 만나 세 천사의 기별을 발견한다. 그리고 누노비끼폭포에서 침례를 받고 최초의 한국인 재림교인이 된다.

이처럼 한국 재림교회는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지 않고, 본국인에 의해 신앙을 받아들이는 경이로운 역사를 갖고 있다.

신앙의 씨앗은 놀랍게도 바로 2년 뒤, 교육사업을 태동시켰다. 오늘날 삼육학교의 전신인 의명학교의 설립이 그것. 이처럼 교육사업은 한국 재림교회 선교역사와 발걸음을 같이하며 수많은 인재를 양성했다.

재림교회 최초의 중등교육 기관으로 설립한 순안 의명학교의 역사를 계승한 한국삼육중.고등학교가 이달로 개교 1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한국 교회 중등교육사업의 중추적 역할을 해 온 한국삼육중.고는 선지자 교육을 통해 영(靈) 지(智) 체(體)의 균형진 발달이라는 목적과 이상을 실현하며,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는 인물을 배출해 왔다.

■ 1906~1937 : 삼육의 주춧돌을 놓다(의명학교 시대)
의명학교는 1906년 10월 10일 평안남도 순안 포정리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교역자 양성을 위한 사숙을 개설하는 것으로 역사를 시작했다. 초대 교장에 스미스 목사가 취임했다. 이듬해 1월 29일 순안 의명학교 설립인가를 얻었다. 첫 졸업생은 1913년 3월 23일 배출했다. 남녀 6명이었다. 1914년 10월에는 300석 규모의 강당과 예배소를 준공했다. 1922년 2월 25일 (재)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조선합회 유지재단이 설립됐다.

중등학교로 연명해 오던 순안 의명학교는 1937년 3월 11일 23회 졸업생을 끝으로 순안교인에게 양도된다. 그나마 학교운영회 이사진에 재림신자이 많아서 한동안은 삼육학교의 교육이념을 그대로 따를 수 있었지만, 1938년 개정된 제3차 조선교육령에 의해 명칭을 순안중학교로 개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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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1953 : 시련 속에 이뤄진 변화(삼육학교 시대)
1938년 4월 8일 서울 회기동 본부교회에 ‘경성삼육원’을 설립했다. 다음 해 9월 30일에는 당시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 면목리에 교사와 기숙사 및 사택을 건축해 이전했다. 그러나 1943년 12월 28일 일제의 탄압으로 교단이 해산되면서 의명학교도 폐교의 비운에 이르게 된다.

해방 후 1947년 9월 들어서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 면목리 경섬삼육원 자리에 ‘삼육중학교’가 다시 문을 열고 수업을 재개한다. 오늘날 고등학교 과정이다. 이재명 목사가 초대 교장에 취임했다.

1948년 7월 11일에는 현재의 부지를 매입해 교사와 실업관을 건축했다. 당시 행정구역상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 223번지 일대다. 태릉에 있는 이왕직 소유의 약 21만평 부지를 구입해 이전했다. 1949년 1월에는 문교부로부터 3년제 초급중학교 인가를 받았다. 그해 11월에는 중학교와 신학교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으로 임시 휴교한 학교는 1951년 3월 11일 제주 성산포로 피난하여 임시 개교한다. 그해 8월에는 전란 중에도 제1회 졸업식을 열어 15명의 학생이 감격적인 졸업장을 받아든다. 그러나 1952년 11월 30일 한국연합회는 중학교를 폐지하기로 결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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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1979 : 삼육교육을 위한 힘찬 발걸음(삼육고등학교 시대)
전후 복구에 안간힘을 쓴 한국삼육학교는 1954년 5월 11일 기숙사(시화사)와 식당을 준공한다. 1955년 9월 20일에는 장미사와 의명사를 완공했다. 강당, 남북교사, 정문, 목장도 이때 들어섰다. 시화사, 장미사, 의명사 등 생활관은 당시 학교를 다닌 40-50대 중장년층에게는 지금도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름.

1957년 10월 10일에는 문교부로부터 삼육고등학교로 개편인가를 받았다. 3학급 150명 정원 규모였다. 1960년에는 기존 3학급에서 6학급으로 학급을 증설했다. 1963년 3월 16일. ‘한국삼육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1965년 12월 17일에는 한국삼육중학교 설립 인가를 획득했다.  

그러나 1969년 6월 24일 열린 한국연합회 행정위원회는 한국삼육을 서울삼육과 통합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동문들의 반대와 꾸준한 문제제기로 1971년 7월 행정위원회에서 학교폐지안을 재심의하고, 폐지인가를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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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 현재 : 빛을 발하는 삼육교육의 도약과 열매
80년대 들어 한국삼육학교는 발전의 기틀을 다진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열매를 맺게 된다. 한국삼육은 1980년 2월 신축 교사를 짓고, 1985년 11월에는 강당을 지었다. 1987년 10월에는 기존 9학급을 12학급으로 증설했다. 1991년 2월에는 14개 교실의 증축공사를 마무리했으며, 그해 10월 남녀기숙사를 건축했다. 학급도 15학급으로 늘었다.

1994년 7월 20일에는 중학교 교사를 새로 지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분리 수업을 실시한 것도 이즈음이다. 중학교의 학급 규모가 커지면서 1996년 3월 1일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완전히 분리했다.

고등학교는 2002년 5월, 18학급으로 증설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기숙사 의명사와 청송사를 준공했다. 2005년 10월에는 특별교실동을 건축했으며, 2011년 10월 10일에는 개교 105주년기념 ‘나욧관’을 지어 선진적 교육환경을 구축했다. 특히 2012년 12월 치른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서울시 일반계교 2위에 올라 교육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도약기를 거친 한국삼육고등학교는 ▲창의적 삼육교육목표 구현을 위한 인프라 구축 ▲미래가치 창출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전인교육 실현 ▲장래 꿈을 심어줄 현대교육 및 문화활동 활성화 ▲문제해결 능력 배양 및 교사, 학생, 학부모의 협력교육 등 근래 들어서도 지속적 발전을 위한 중흥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또한 한국삼육중학교는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해외선교 시대에 대비한 국제적 지도자를 길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원어민과 함께하는 생활 외국어 교육 및 영어 디베이트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교과교실제학교(과목중점형)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특색사업을 통해 명문사학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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