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 안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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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 안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고난 속에 피어오른 기쁨의 꽃
1953년 12월 22일 자 『유스 인스트럭터』지에 미국 독자를 위해 맨 처음 실린 이야기입니다. 전 세계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분량과 내용을 편집하여 소개합니다.
"예쁘죠, 아빠?"
밀리가 조그마한 방을 꾸민 장식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어요. 목소리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죠. 그때는 크리스마스였어요. 황량하게 보이는 방에 활기를 조금 불어넣으려고 밀리가 장식을 매달아 놓은 거였어요.
아빠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뿌듯하면서도 슬픔으로 무거웠어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수용소에서 지낸 그 해에는 이전에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하나도 누릴 수 없었어요.
밀리와 오빠 딕, 부모님이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봉사하려고 고향을 떠난 지 4년이 넘었어요. 그런데 필리핀으로 와서 1년도 채 되지 않아 전쟁이 터졌어요. 처음에는 폭탄이 떨어지더니 갑자기 밀리 가족의 선교 생활이 악몽으로 바뀌었어요.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거든요. 아빠는 어느 수용소로 보내졌고, 밀리와 오빠, 엄마는 다른 수용소로 보내졌죠. 4개월이라는 길고 무서운 시간 동안 서로 헤어져 있었어요. 그런데 아빠가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사정해서 마침내 온 가족이 마닐라에서 다시 만났어요. 그 이후부터는 쭉 함께했어요.
함께이긴 했어요. 수용소 안에서 말이에요.
밀리 가족이 사는 곳은 마닐라에 있는 수용소였는데 서른 명 정도 되는 다른 선교사들과 같이 살았어요. 먹을 것이 부족했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고, 매일 전쟁의 그늘이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었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삶은 계속되었어요.
밀리나 딕과 같은 아이들은 사소한 것에서도 기쁨을 찾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어요. 어느 날 가족이 머무는 조그마한 방으로 밀리가 뛰어 들어왔어요. 눈은 신나서 반짝이고 있었어요.
“엄마, 자석 있어요?” 밀리가 간절하게 물었어요.
“아마 있을 거야. 그런데 그걸로 뭐하게?” 엄마가 물었어요.
“애들이 전부 자석으로 못을 찾고 있어요. 오빠가 빈 막사에서 판자를 가져왔는데 오빠 말로는 아빠가 그걸로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 수 있을 거래요. 굉장하지 않아요, 엄마?”
엄마가 웃으면서 자석을 건네주었어요. “그거 좋은 생각인데. 바로 여기 마루판 사이부터 찾아볼래?”
아빠가 방을 되도록 편안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이 아이들은 작은 계획을 세워 바쁘게 움직였어요. 아빠는 아이들의 방에 들어갈 투박한 가구를 만들고 막사 바로 밖에 작은 부엌도 만들었어요. 특별한 먹을거리를 찾기가 힘들었지만 어쩌다 찾은 경우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생겨서 좋았어요. 보통은 묽은 쌀죽에다 여기저기를 뒤져 아무 채소 잎이라도 찾으면 그걸로 끼니를 때웠어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수용소에 희망의 기운이 감돌았어요. 전쟁 이전처럼 축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보내기로 모두가 마음먹었죠.
그래서 엄마가 그날 먹을 음식으로 쌀죽을 조금씩 아껴 두고 있었어요. 조금씩 모아 케이크같이 작은 간식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을 모았죠. 거기에 귀한 설탕 한 스푼과 약간의 코코넛 가루와 라임즙 그리고 소금을 아주 조금 넣었어요.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갇혀 있는 상태에서는 진수성찬이었어요.
보잘것없지만 소중한 것
크리스마스 아침에 눈을 뜬 밀리 가족은 배고픔을 느끼면서도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어요. 교도관들도 명절 분위기를 감지한 듯 수감자들이 매일 하는 일에서 잠시 쉴 수 있도록 해 주었어요.
“우리 언제 먹어요?” 딕은 벌써 이 질문을 100번도 더했어요. 딕의 허리띠는 전쟁 전보다 더 조여져 있었는데 몸이 더 말라서 그런 거였어요. 그 어떤 선물보다 특별한 음식 먹을 생각이 딕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어요.
마침내 온 가족이 거친 나무 테이블을 둘러싸고 모였어요. 접시마다 밥이 조금씩 담겨 있었는데 너무 얇게 깔려 있다 보니 샐러드에 가려 잘 안 보일 정도였어요. 녹두 몇 알과 물, 마늘을 약간 섞어 만든 수프는 먹어도 간에 기별이 안 갔지만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게 먹었어요.
식사가 끝나자 엄마가 ‘케이크’를 꺼냈어요. 4명이 먹기엔 턱없이 작았지만 한 조각씩 받아 아껴 먹었어요. 천천히 부스러기까지 맛있게 먹었죠.
설거지를 마친 뒤 온 가족이 기쁜 마음으로 방 한쪽 구석에 모아 둔 선물 쪽으로 갔어요. 하나같이 작고 보잘것없었지만 말로 표현 못할 만큼 소중했어요.
먼저 엄마가 아빠에게 선물을 줬어요. 엄마가 몇 주 동안 만든 달력이었어요. 낡은 셔츠 자락을 오려서 만들었고 이웃에 있는 사람이 그 위에 그림을 그려 줬어요. 엄마가 가장자리를 빨간색과 파란색 실로 꿰매어 장식했어요. 아빠는 달력을 손에 쥐고 한 땀 한 땀에 들어 있는 사랑과 정성을 느꼈어요. 그러고는 달력에 적힌 해가 지나가기 전에 풀려나게 해 달라고 조용히 기도했어요.
그다음으로 딕이 엄마에게 선물을 줬어요. 딕과 아빠가 엄마 몰래 만든 거였죠. 바로 버려진 나무로 만든 대걸레였어요. 두 사람을 꼭 껴안은 엄마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어요. “이제 바닥을 닦다가 가시에 찔릴 일이 없겠네.” 엄마 목소리가 감동에 젖어 있었어요.
다음으로 밀리가 엄마에게서 선물을 받았어요. 엄마가 천 조각을 정성껏 꿰매어 만든 작은 판다 곰 인형이었죠. 눈 부분에는 낡은 신발에서 떼어 낸 단추를 달았고, 속은 엄마의 침낭 패드에서 뺀 솜으로 채웠어요. 밀리는 곰 인형을 꼭 껴안으며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느꼈어요.
마지막으로 딕의 차례였어요. 딕이 열심히 손을 놀려 선물 포장을 뜯더니 얼굴 가득 기쁨이 피어올랐어요. 그 안에는 야구공이 들어 있었어요. 바로 딕이 원하던 거였죠. 아빠가 동료 포로와 물건을 교환하여 야구공을 받았는데 공이 낡고 여기저기 긁혀 있었지만 딕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공이 없었어요.
그런데 선물 한 개가 더 남았어요. 얇은 종이로 포장된 작은 상자였어요.
“아빠 거예요.” 밀리가 수줍게 말했어요.
아빠가 조심스럽게 열어 보니 각설탕 하나가 나왔어요. 어린 딸을 바라보는 아빠의 눈에 눈물이 고였어요. 며칠 전에 어떤 마음씨 좋은 여자가 밀리에게 각설탕을 준 일이 기억났어요. 밀리가 그걸 먹지 않고 아빠에게 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고맙다. 우리 딸!”
아빠가 목멘 소리로 말했어요. “그런데 우리 같이 먹을까?”
가족이 각설탕을 네 조각으로 작게 나누었어요.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인각설탕을 천천히 즐기며 먹었어요. 많지는 않았지만 충분했죠.
그렇게 해서 각설탕과 야구공, 대걸레, 판다 곰 인형, 달력으로 밀리 가족은 기억에 길이 남을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로밀다 거스리 허멀 1953년에 이 이야기를 썼습니다. 당시 16세로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샌디에이고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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