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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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은 항상 뜨거운 주제였는데 성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고 실천 범위가 넓어지면서 지금은 더욱 그렇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성도로서 우리는 어떻게 이 주제에 대해 사려 깊고 성경적이며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사랑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사랑이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그런 표현은 ‘믿음은 믿음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순환 논법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사랑’의 진짜 정의를 찾는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라고 말한다. 따라서 사랑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분은 자신의 말씀인 성경에서 자신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신다.1
하나님께서 성을 디자인하셨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말한다(창 1:2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하셨다. 그분은 우리 육체의 모든 부분을 빚으시고, 우리가 자손을 낳을 수 있도록 지으셨다. 그런데 번식이 가능한 동물과는 달리 남자와 여자(남편과 아내) 사이의 성행위는 단순한 교미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혼인 서약의 보호 아래 성 경험을 누리며 평생 헌신 속에서 친밀한 관계의 신성함을 위해 성적 연합을 계획하셨다. 히브리서 13장 4절에서는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우리는 죄 많은 세상에 살고 있고 하나님의 디자인이 뒤틀어져 버렸다. 그분의 설계가 일그러졌기에 그분의 사랑도 일그러졌다. 성의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설계에 대한 이런 왜곡들은 흔하게 일어날 뿐 아니라 일부 사람에 의해 세상에 널리 퍼졌다. 이렇게 커지는 문제들을 고려해 보면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 성경을 우리의 나침반으로 삼으면 우리는 인정 많고 사랑 넘치고 유능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안전하다
성경은 우리에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골 3:12)을 옷 입으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마치 인간보다 못한 존재인 양 불친절하거나 무례하게 대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분의 눈에 소중하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두 장 앞에서 여러 죄를 열거한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요”(롬 1:29~31).
이 모든 죄는 우리와 구주와의 관계를 끊어 버린다. 그럼에도 우리가 참된 회개로 그분께 나아갈 때 그분은 기꺼이 용서하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이 구절은 희망을 준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한다. “얽매이기 쉬운” 죄에 갇혀 있지 말고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 2).
진리를 막는 일
골로새서 2장 8절에서는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매우 존경받는 사람 중에도)은 성경의 말씀을 왜곡하려 한다. 바울은 누구든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자신을 속이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라.
다시 로마서 1장을 보면 18절에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니.” 오늘날 교회에도 이 구절 특히 24~28절의 진리를 막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며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이 구절에 언급된 진리를 막으려는 자들은 이 구절의 실제 의미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명백하다. 하나님께서는 남들이 우리를 반대하고 폄하하고 무시할지라도 우리가 신실하고 그분의 말씀의 진리를 전해야 한다고 명한다.
적극적 사랑
이제는 적극적인 사랑과 존중의 자세로 성경의 메시지를 전해야 할 때이다. 이것이 참자유의 길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눅 4:18) 주기 위해 오셨고 이것은 오늘날 그분이 우리에게 주는 부르심이다. 치유하시는 그분의 손길이 필요치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희망과 용기를 주며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더 행복한 삶의 길을 제시하는 아름다운 구절이 많다.
흥미롭게도 고린도전서 6장 9~11절에 기록된 구절은 여러 면에서 로마서 1장 27~31절과 유사하며 놀라운 간증으로 끝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과거 시제).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성령께 복종할 때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때 우리는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 것이며 그 이야기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은 물론 무엇보다 하나님과 화해하게 해 준다. 재림교인으로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여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을 그들에게 소개해야 한다.
성경에 기초한 더 많은 실천적인 자료를 보려면 humansexuality.org를 방문하라. 이 사이트에는 기사, 이야기, 여러 자료와 함께 재림교회에서 결의한 인간의 성에 관한 진술과 지침에 대한 링크도 찾아볼 수 있다.
*본 기사는 다음의 기사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Ministry』지 2024년 10월 호의 기사 “Embracing Human Sexuality: Guided by God’s Word”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www.MinistryMagazine.org
테드 N. C. 윌슨(지난 호 필자 설명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