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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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중에서
인간의 마음을 놓고 벌이는 우주적 싸움
사람은 누구나 고통과 슬픔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보편적인 현실이다. 고통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한다. TV, 소셜 미디어, 뉴스 채널을 조금만 봐도 기근, 자연재해, 전염병, 세계적 유행병, 인신매매, 질병, 사망, 가정 폭력, 약물 남용, 전쟁, 박해, 대량 학살, 외국인 혐오증, 총격 사건, 기후 변화, 경제난, 종교 박해는 끝이 없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뜨거운 질문은 ‘자비하시고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세상에 이토록 많은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이다. 자비하시고 사랑 넘치는 분이라면 왜 아기들이 죽고 사람들이 전쟁으로 엄청난 피해를 당하며 선한 사람이 고통을 받도록 내버려 두실까?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왜 이것을 멈추지 않으실까? 세상의 모든 고통으로 미루어 신은 존재할 수 없다고 결론짓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궤도 이탈
창세기의 첫 두 장은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세상, 고통이 없고 사람들이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세상에 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좋은 세상을 만드셨지만 인간은 선택의 자유를 부여받았고 그들의 선택은 결국 세상을 망가뜨렸다. 고통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첫 남자와 여자인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모든 것이 갖추어진 완벽한 세상을 마련하여 그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도록 하셨다. 그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외에 하나님과 그분의 모든 창조물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창 2~3장).
이 충성의 시금석을 제공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됐다는 사실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알려 주셨다. 그러나 사탄은 이렇게 속삭였다. 하나님이 그 나무를 멀리하라고 경고하신 이유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신이 될 권리를 인간에게서 박탈하기 위해서라고,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사탄의 말을 듣고 인간은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다고 여겼고, 그 결과 독립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욕구 충족(죄)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되었다.
그 선택으로 인류는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고 그분이 만드신 완전한 세상에 불완전과 고통과 죽음이 찾아왔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시어 죄를 타도하고 인간을 구출할 계획을 미리 세워 두셨다. 독생자는 죄의 형벌인 죽음을 짊어지고 부활하시어 사탄을 타도하셨다. 또 그 승리를 자기 것으로 삼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과 영원히 화해시키실 것이다.
한편 우리는 선과 악의 격전장 한가운데서 우리를 둘러싼 죄의 결과를 보면서 이것이 사탄의 속임수로 지속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신성한 계획을 제공하신다. 그분은 또 인간의 마음을 놓고 벌이는 대쟁투에서 어쩔 수 없이 부수적인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자신의 구속받은 자들이 동참하도록 독려하신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사탄은 그 자신이 세상에 초래한 고통에 대해 우리가 하나님을 탓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들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선과 악의 우주적 격전장에 있는 이들을 보살피면서 자기와 협력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호소하신다. 하나님이 자기 사람들을 이끌어 치유 사업에 동참케 하시는 사례가 성경에는 적지 않게 나타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창 12장). 하나님은 노예 생활하는 요셉의 불행을 활용해 애굽을 기근에서, 그의 가족을 굶주림에서 구하신다(창 37~50장).
이집트에 있는 자기 백성을 노예에서 해방하려는 열망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표명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출 3:7~10, 새번역).
욥은 부르짖는 가난한 자와 도와줄 자가 없는 고아를 건졌다고 스스로 간증했다. 그는 궁핍한 자의 아버지가 되었고 나그네의 문제를 돌보았다(욥 29:11~17).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을 거듭 불러내어 고통 속에서 치유의 도구가 되게 하신다.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잠 31:8~9)라고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에게 명하신다.
예수님은 이사야 61장을 인용해 자신의 지상 사역을 선포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이와 같이 예수님은 희년의 화신이 되어 억압적인 사회적·경제적 구조를 재부팅 하며 세상에 치유를 가져다주셨다.
선택은 나의 몫
영원한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이 죄에서 구원받았다고 선언한다. 예수님은 섬김의 생애를 살면서 아버지께 전적으로 의존하셨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죄의 형벌인 죽음을 스스로 짊어지셨다. 부활하여 죽음을 정복하셨고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셨다(요 11:25~26).
예수님은 다시 와서 자기 백성을 구속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의 재림을 고대하는 그의 백성은 “이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들”(마 25:31)을 사랑으로 섬기면서 이 영원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내도록 부름 받았다.
우리가 주변에서 경험하고 목격하는 고통이 누구 때문인지 따지려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는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도록 부름 받은 자들이다. 죄의 참상이 세상에 계속되도록 놔둘 것인지 아니면 우리를 치유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시는 분 곁에 설 것인지 선택하라고 지금 그분이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가스파르 콜론 은퇴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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