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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되는 성경 구절 (62) 누가복음 1장 3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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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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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눅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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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구절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 탄생에 대하여 알려주는 과정에서 한 말이다. 한글 성경(개역한글, 개역개정)을 읽는 대부분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성경 말씀으로 이해하여 본 구절을 성경 말씀의 무한한 능력을 강조하는 데 즐겨 사용한다. 그런데 필자는 여러 영어 번역본을 읽는 가운데 거의 모든 역본이 여기서 “말씀(word)”이라는 단어를 생략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또 한글 성경 중 공동번역과 새번역은 영어 역본들과 마찬가지로 이 구절에서 “말씀”이라는 단어를 생략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본 구절의 명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본 구절은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인가? 


먼저 본 구절을 포함하고 있는 문맥을 간략하게 재구성해 보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마리아”(눅 1:26, 27)에게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눅 1:30)는 소식을 전한다. 마리아는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눅 1:31)라는 천사의 말에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라고 반문한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눅 1:35)고 분명하게 알린다. 계속해서 천사는 처녀인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믿을 수 없었던 마리아에게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눅 1:36)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천사는 분명한 어조로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라고 천명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마리아에게 분명해졌다. 그녀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증거가 제시되었다. 이제 마리아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라고 말하면서 천사의 수태고지(受胎告知)를 받아들인다. 따라서 문맥 속에서 보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성경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또 본 구절을 성경의 무한한 능력으로 적용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라는 번역에 사용된 레마(ῥῆμα; word, thing, matter)라는 헬라어 단어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이를 ‘말씀’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레마’에 상응하는 히브리어 ‘다바르(רבד‘(는 구약에서 ‘말씀’ 이외에 ‘일’, ‘사건’, ‘사물’ 등을 가리킬 때도 사용됐다(창 20:10; 출 5:13; 레 23:37; 대하 8:13; 창 15:1; 22:1 참조). 즉 누가는 본 구절에서 구약의 ‘다바르’에 해당하는 ‘레마’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말씀’이 아니라 ‘일, 사물, 사건’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적합해 보인다. 이를 위한 대표적 예는 창세기 18장 14절이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들이 있으리라”라는 소식을 듣고 “속으로 웃고…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창 18:10~12)라고 불신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웃음을 책망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이 있겠느냐?”(창 18:14)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누가는 창세기의 이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예는 이스라엘 땅의 회복을 위한 예레미야의 기도 속에서 볼 수 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렘 32:17). 사실 이와 같은 사상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반복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성경 말씀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지니신 모든 뜻 혹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하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라고 말씀하신다. 



​지상훈 ​신학박사, 토론토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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