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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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던 우리 가정에 늦둥이 딸이 생겼다. 늦둥이라 그런지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럽다. 우리 딸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곱슬머리이다. 아빠도 곱슬, 엄마도 곱슬이라 아기는 곱슬이 곱빼기가 된 것 같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파마했나 봐요?”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아니요, 자연산이예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대부분 “컬이 자연스럽게 잘 나왔네요. 돈 벌었어요.”라고 말한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곱슬머리를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내 눈에는 곱슬머리를 한 만화 캐릭터 같아 귀엽고 예쁘다. 그런데 가끔은 아이가 더 어른스러울 때가 있다. 아빠나 엄마 중 한 명이 다쳐서 피라도 나면 “피 나? 아파?”라고 물어본다. “응, 피 나, 아파.”라고 대답하면 “괜찮아, 보미가 있잖아.”라며 위로도 한다. 요즘은 약도 자기가 발라 주고 밴드도 자기가 붙여 준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는 아침에 “아빠, 엄마 아프지 않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도 해준다. 안 그래도 요즘 건강에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어쩜 말하는 것도 이렇게 예쁠까? 그런데 정작 내가 예쁘다고 하면 “아니야, 아빠! 보미는 귀여워.”라고 아빠의 편파적인 시각을 객관적으로 정정해 준다.
30대까지만 했어도 “애만 낳아 주면 내가 다 키울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아내에게 큰소리쳤던 나지만 첫째를 암으로 먼저 보내고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육아는커녕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고 육아는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내 나이 마흔일곱에 선물과도 같은 아이가 찾아왔다. 아이를 보며 ‘이 나이에 육아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어떤 가정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자와 손녀를 키우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나도 고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부모님의 맞벌이로 인해 외할머니가 대부분의 육아를 담당하셨다. 외할머니는 경북 경주가 고향이셨는데 나 때문에 고향을 떠나 먼 부산으로 오셔서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시고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할 무렵 돌아가셨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육아를 하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지만 지금의 나처럼 그때의 나를 보며 할머니도 예뻐서 기운이 나셨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생전에 할머니께 감사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죄송하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나는 할아버지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없는 게 아니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모두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우리 딸도 할아버지가 없다. 나처럼 두 분 할아버지 모두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말을 배울 때 ‘할아버지’라는 말을 제일 늦게 했다.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없지만 때로는 할아버지의 마음으로 육아하면 되니까 아빠의 나이가 많은 것도 이렇게 쓰임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나는 보미가 뭘 해도 마냥 예뻐 보이고 감싸 주고 싶은 그런 할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바라볼 때가 종종 있다.나는 오늘도 아이의 모습 속에서 나를 보고 아내를 만난다. 아이가 나와 아내의 좋은 면만 닮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아이의 모습이 싫거나 실망스럽지 않다.
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부모를 닮은 아이를 보며 느끼는 이 예쁨과 사랑스러움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우리 아이의 태명은 기쁨이었다. 늦은 나이에 생긴 아이가 내 삶에 시련이 아닌 기쁨이 되기를 바랐고 우리 가정에 기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었다. 나는 계절의 시작이 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때는 봄이 싫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봄이 좋다. 아이의 이름인 보미도 봄에서 따온 것이다.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 봄의 따뜻함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낀다. 이렇게 우리 가정에 찾아온 보미로 인해 우리 집의 계절은 오늘도 따뜻한 봄이다.
- 최원웅 부산 대연고등학교 직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