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먹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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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자연에서 얻은 식품을 먹으며 살아왔다.
주식도 채식이었고 간식 역시 떡과 같은 채식이었다.
한식의 전통에는 과학이나 영양학적 조언도 없었지만
우리 민족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삶의 밑거름이 되어 왔다.
무엇을 먹어야 건강할까? 내 지인은 날마다 탄·단·지를 골고루 먹으려고 애쓴다고 했다(탄단지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줄인 말이다.). 본래 우리는 문화와 관습에 따라 자연스럽게 음식을 먹었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은 본래 없었다는 의미이다. 마치 숨 쉬는 것을 의식하지 않듯이 음식을 먹는 일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습관이었다. 그런데 어느샌가부터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고민하고 심지어 불안해하기까지 한다. 바로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을 전통에서 벗어나 서구 음식과 함께 들어온 과학과 소위 영양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나서부터이다.
그동안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라는 과학적인 연구의 결과를 기초로 음식을 선택했고, 영양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식습관의 문제들을 해결해 왔다. 문제는 오히려 이른바 성인병에 걸렸거나 과체중인 인구의 비율은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연령은 더 낮아졌다는 점이다.암 발생률도 역시 계속해서 높아져만 가고 있다.물론 이 모든 현상의 원인을 영양 전문가나 영양학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건강하기 위해 전문가의 조언을 따르며 들였던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 봤을 때 우리의 몸이 처한 작금의 현실은 너무나 억울하게 느껴진다. 하얀 가운을 입은 선생님들이 영양에 관한 조언을 해 주는 TV 프로그램 채널 바로 다음 채널에는 영양 보충제 홈쇼핑을 방송하고 있다. 영양에 관한 정보는 상업적인 수익을 올리는데 매우 탁월한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정작 우리의 몸은 왜 건강해지도록 바꾸지 못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자연과 상호 작용하던 전통 음식
인류는 이 땅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생존을 위해 음식을 먹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경험을 통해 체득했고 오랜 시간 동안 알게 된 모든 것을 DNA에 축적해 왔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점진적인 시행착오를 겪으며 습득한 위대한 생존의 지혜만으로는 이제 인류는 생명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더 이상 자연에 기대어 음식을 얻지 않으며, 인류가 각자 쌓아 온 오랜 식문화의 전통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에게 오랜 기간 익숙해진 음식을 더 이상 먹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 당신이 먹는 음식은 당신의 몸이 원하는 음식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자연과 상호 작용하며 음식을 먹어 왔던 고유의 전통적인 식문화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였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전통은 그 자체가 민족의 철학이고 지혜이다. 특히 음식의 전통은 민족의 생명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그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두부는 대두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대두 자체에는 ‘반(反)영양소’가 들어 있다. 대두 자체를 조리 과정 없이 먹었을 때는 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대두를 삶은 후 응고와 침전의 과정을 거치면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고단백질 식품인 두부가 만들어진다. 된장 역시 마찬가지다. 푹 삶은 대두는 발효를 거쳐 깊은 맛과 풍미를 가진 면역 식품으로 재탄생한다. 어느 민족이든 나름의 방식으로 자연에 적응하며 그들만의 식문화를 이루며 그 문화의 전통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모두 건강할 수밖에 없다.
지구촌 건강 마을의 식단
블루존은 지구촌에서 가장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뜻한다. 그런데 대표적인 장수촌 중에 한 곳인 일본의 오키나와의 식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오키나와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블루존이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비만율은 일본의 남녀 전체 평균을 뛰어넘었다. 이와 더불어 오키나와의 수명 역시 일본 내에서 36위로 내려앉았다. 이제 오키나와는 더 이상 장수촌이 아닌 단명촌으로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오키나와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식생활이 서구식 음식으로 인해 변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에 미군이 주둔한 이후로 서구식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채식을 하며 소식하던 문화에 특히 스팸과 같은 통조림 고기가 밥상과 외식에 자주 오르기 시작했고, 맥도날드, KFC 같은 패스트푸드점이 급속히 늘어났다. 통조림 고기와 더불어 소고기의 소비량이 늘어서 오키나와에선 술자리 뒤에 스테이크로 해장한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다. 오키나와의 현실은 한국 식생활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오키나와 비슷한 서구적인 식생활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다이어트 열풍 속에서 음식을 영양소로 분석하여 기계적으로 섭취하기도 한다.
건강하다고 여겨지는 채식조차도 쉽게 왜곡될 수 있다. 채식의 영양학에 지나치게 얽매여서 극단적인 식단을 지향할 수도 있다. 또한 서구식 식습관을 떨치지 못해서 식물성이지만 초가공식품에 해당하는 음식에 쉽게 현혹되거나, 굽고 튀긴 채소로 맛을 낸 음식만을 쫓아 비건 레스토랑을 전전할 수도 있다. 이런 식생활을 지속한다면 채식을 하더라도 건강하지 않을 수 있으며, 살이 찌고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채식 역시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의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 세계의 블루존의 특징은 대부분 전통을 따라 채식 위주의 식단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건강하다고 믿는 지중해 식단 역시 알고 보면 대부분 식물성 위주의 채식 식단이다. 예를 들어 세계의 블루존 중에 한 곳인 그리스 이카리섬의 식단은 여름 나물, 호박전, 호박꽃잎전, 바게트빵, 오징어 튀김, 레드 와인 등이다. 이곳의 주민 중 한 사람은 옛날 기본 식단에는 나물류가 많았고,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나물을 먹었다고 한다. 그들이 차린 식탁과 인터뷰에는 채식을 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무엇을 먹어야 건강할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답이 있다. 나는 지중해 식단을 보며 한식을 떠올렸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자연에서 얻은 식품을 먹으며 살아왔다. 주식도 채식이었고 간식 역시 떡과 같은 채식이었다. 한식의 전통에는 과학이나 영양학적 조언도 없었지만 우리 민족이 건강하게 살수 있는 삶의 밑거름이 되어 왔다. 사람은 오랫동안 자연에서 필요한 것을 빠짐없이 모두 얻으며 살아왔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이고 진리이다.
- 홍승권 채식 요리 연구가,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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