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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나를 위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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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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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면 항상 지인들에게 감사와 행복을 기원하는 전화나 카톡을 보낸다. 반세기를 살아온 인생의 인연 중 고마운 사람들은 따스한 마음의 온기를 느끼게 하고, 마음을 콕콕 아프게 한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그 기억들을 지워 버리려 한다. 또한 가슴 아픈 사연으로 만났지만 인생의 스승이 되어 준 분들을 떠올리면 그분들이 가르쳐 주신 인생의 정석을 펼쳐 내 마음의 사용법을 다시금 수정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용서가 죽기보다 힘든 일이지만 우리에게 행복의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실제적으로 보여 주신 용서의 정석 같은 분이 있다. 그분을 생각할 때마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으로 혼탁했던 나의 마음이 조금은 맑아지게 된다.

어느 날 한 중년 남자분이 자기 어머니를 만나 줄 수 있는지 문의해 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분노로 식사도 하지 않고, 누워만 계셔서 돌아가실 것 같아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아들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어머니를 만나기로 하였고, 상담실로 들어오는 그분을 본 순간, 마치 높다란 겨울 산꼭대기에서 거친 바람에 시달려 앙상해진 나무가 떠올랐다. 그분에게 어떤 말을 듣지 않아도 마음속에 얼어붙은 한 많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분은 갑작스럽게 아들에 의해 낯선 상담실에 온 것에 분노하셨고, 아무 말도 없이 1시간 넘게 자리를 지키다 돌아가셨다. 아들의 팔에 의지하여 상담실을 나가는 그분의 뒷모습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불안하였다. 그분을 그냥 보내 드린 것에 대한 내적 갈등을 하고 있을 때 아드님이 다시 찾아왔다. 그는 어린 시절 집에서 아버지의 폭력과 욕설 때문에 매일이 지옥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자신은 상담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찾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그 고통 가운데 사시는 것 같아 슬프고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 남지 않은 여생 동안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평안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아드님의 눈물 어린 고백은 용기 없던 내 마음을 움직였고, 나는 아드님과 함께 그분의 집을 방문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분은 낯선 상담자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으셨지만 자신의 매몰찬 반응에도 찾아온 나를 거부하지는 않으셨다. 매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찾아가 인사드리던 어느 날, 그분이 직접 상담실을 찾아오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상담자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으시더니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충격적인 일들을 쉴 새 없이 털어놓기 시작하셨다. 꽁꽁 얼어붙은 기억들을 하나씩 풀어놓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져 숨을 고르기 위해 가슴을 치며 눈물과 함께 토해 내듯이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을 쏟아 내셨다. 그리고 남편에게 무기력하게 당했던 설움과 자신의 무능력함으로 자녀들을 지켜 주지 못한 죄책감에 죽고 싶다고 하셨다. 이제는 죽어서도 복수할 수 없는 배우자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악순환을 이루고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그분에게 공감하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나는 한 가지 부탁을 드렸다. 10분 동안 빈 의자를 향하여 온 힘을 다해 막대기를 휘둘러 보라고 요청하자 그분은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시다가 막대기를 힘껏 휘두르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체력이 약하셔서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막대기를 내려놓으셨다. 그 후 나는 그분께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는 용서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숯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라는 한 불자의 말을 들려 드렸다. 지금은 이 땅에 존재하지도 않은 남편을 향해 하루 종일 미움과 분노 속에 계시는 모습이 던질 대상이 사라져 뜨거운 숯을 던지지 못하고 스스로를 아프게 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돌아가신 배우자에 대한 분노가 그분의 심장병을 악화시키고, 남편의 폭력 속에서도 온몸을 던져 끝까지 지켜 낸 자녀들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그분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긴 비극적인 세월을 견뎌 온 마음의 힘을 돌아보며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에게 되물으셨다.

그분과 나는 매주 만날 때마다 몸의 긴장과 경직을 풀기 위한 이완 훈련을 진행하고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 생각을 분석하며 상처받고 힘들어했던 자신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의 관점에서 최선을 다해 버티고 견뎌 낸 자신의 긍정적인 순간과 선택을 떠올리며 그 장면들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도 적어 보았다. 정말 미운 배우자였지만 그의 비참한 인생사를 알기에 술과 폭력으로 자기 자신과 가족을 괴롭혀야 했던 남편을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는 편지도 써 보았다. 다시금 배우자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올라올 때는 스스로 몸과 마음을 지키고 가족 및 지인의 도움을 요청하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생애 동안 그분이 바라던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고통 속에서 함께 견디며 살아온 자녀들과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희망 리스트도 작성하였다. 3개월 뒤 추수 상담에서 아드님과 다시 만난 그분은 자신만의 용서의 정석에 따라 꾸준히 마음 훈련과 수영을 하면서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용서는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심리학의 정석을 몸소 보여 주신 그분은 미워하는 이들을 향한 복수로 자신의 삶과 건강을 해치지 않고 악연으로 엮어 놓은 끈을 놓음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삶에 집중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다. 새해를 맞아 그분처럼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으로 행복한 삶의 선물을 받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하며 새롭게 시작해 본다.


​김세미 ​기독교 상담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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