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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엘렌 지 화잇

Ⅵ. 신약성서 이후 예언적 은사 가능성 C. 성경상 예언적 은사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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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성경상 예언적 은사의 역할

우라이어 스미스는 엘렌 화잇이 계시 받은 것은 영감된 것이나 증언들은 영감받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여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W.W. 프레스코트는 “성경의 영감성과 관련된 예언의 신 영감성”이라는 주제의 강의에서 예언의 신의 영감성은 성경의 영감성의 하위에 속하는 등급이라고 하고 하여 논난을 야기시킨 일이 있었다. G.I. 버틀러 같은 지도자도 성경에는 영감으로 기록된 부분과 영감으로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등급론을 주장하였다(1SM 23 참고). 영감 등급론은 재림교회 내에서 1880년대까지 지속되었고 그 여파는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재림교회 밖에서 일고 있는 영감 등급론의 허구를 살피는 일은 오늘의 재림신학이 그 영향권을 벗어나는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신·구약 성경 그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또는 확인하는 예언적 은사의 소산물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별을 모세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예언자들에게 계시를 주시고 그 내용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게 하셨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들을 통하여 결정적인 계시를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최대의 종국적인 계시가 되신다 (히 1:1-2; 요 1:18참조).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의 예표와 그림자였으며,  신약성경은 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에 관한 영감 받은 사도들의 증거와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지상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에 관한 사도들의 해석이 하나님의 궁극적 계시를 제공하기 때문에 후에 다른 그 어떤 예언의 선물들도 이에 필적할 수 없는 것이다.

신약 정경 완성 후의 예언적 은사는 신약성경과 동급의 정경적 동등성을 갖거나 그것을 대체하거나 그에 추가적인 정경으로 될 수가 없다.  오히려 예언적 은사를 받았다고 한 주장들은 성경의 검증을 받아야 하게 되었다 (살전 5:19-21; 요일 4:1-3; 마 7:15-20). 그렇다고 하여 신약성서 경전 완성 이후의 예언적 은사에 수반된 계시나 영감의 질이 정경의 그것들에 비하여 하급에 속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는 경전 완성 이후의 예언적 은사의 기능이 정경 내의 예언적 은사의 그것과 차이가 있어 더 열등하다는 뜻도 아니다."The Inspiration and Authority of the Ellen G. White Writings: A Statement of Present Understanding,“  Ministry (1983. 2): 24.

이는 신구약 성경시대에 정경 예언자와 비정경 예언자의 계시와 영감 및 역할 상 차이가 없었던 것에 비추어 보아 확인된다. 나단 같은 비 정경 예언자가 예언적 은사를 받고 수많은 영감적 시를 쓴 다윗을(행 2:30) 책망하였다(삼하 12장). 비 정경 예언자 엘리야의 행적은 우상숭배와 부도덕의 먹구름 위에 찬란히 빛나는 거성 이였다.

오늘날 예언 은사 등급론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이 각기 예언 은사를 활용할 수 있다고 이완시킨 점에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은사를 성령께서 “그 뜻대로 나눠” 주신다 (고전 12:11). 즉, 은사는 성령의 주도권 하에 있지 인간이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성령께서는 다양한 은사 (고전 12:4, 6) 중에 어떤 이에게는 사도로, 어떤 이에게는 예언자로, 어떤 이에게는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이에게는 목사와 교사로 주신다(엡 4:11).  여기서 바울은 예언자 개념을 광의로 일반화시키고 있지 않다. 그래서 바울은 “다 예언자겠느냐?”(고전 12:29)고 부정적 답을 유도하는 수사학적 질문을 하고 있다.  따라서 “다 예언을 하면”(고전 14:24) 이나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고전 14:31)란 말씀은 예언의 은사를 이미 받은 사람들에 관한 일이지 모든 그리스도인을 두고 한 말씀이 아니다.Roger W. Coon, "The Gift of Prophecy for Every Christian?" The Writings of Ellen G. White: Sourcebook of Documents and Study Outlines of Selected Issues in Prophetic Guidance (Berrien Springs, MI: Seventh-day Adventist Theological Seminary, 1992), B-2 참조.

성령의 조명 이론에 입각하여 영감 등급론을 주장하는 자는 이 같은 점을 간과하고 있다.

체험으로부터의 논증은 체험자의 주관적 증언에만 토대를 두고 있는 주관성을 탈피하지 못한다는 한계성이 있다.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수반되는 신체적 현상에 대한 자신의 주장뿐만 아니라 목격자의 증언 내지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헬라어 문법구성 해석상 일반적 원리를 따르기보다는 예외적 현상에서 판단의 일반적 원리를 구축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 주석적 논증의 하나인 “사도들과 예언자들“(엡 2:20)에서 "사도들"에는 관사가 있고 "예언자들"에는 관사가 없는 점에 착안하여 “예언자들인 사도들”로 해석한다. 이는  에베소서 전체의 문맥을 무시하여 그랜빌 샤프의 규칙을James A. Brooks & Carlton L. Winbery, Syntax of New Testament (Lanham, MD: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79), 70 참조.

무조건 적용하는 단견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4:11에서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예언자...주셨으나”에서 각각 관사를 사용하고 있어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명백히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등급론자들이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 13:10)의 해석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재림 시까지 예언자의 등장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이를 광의의 예언자 개념으로 해석할 토대로 삼는 것은 무리다. “예언자”개념을 하나님의 권위가 거세된 예언자 개념으로 이완시키는 일은 모든 신자들을 예언자시하는 것이Ibid.  되어 신약성경에서 예언자 개념을 실종시키는 결과로 귀착된다. 그리고  예언을 가르침의 하위에 두는 것은 정경 완성 이후에 등장하는 예언 은사가 정경 보다 하위에 속한다는 것으로 보면 의미가 있겠으나 동 예언 은사의 질이 정경적 예언 은사에 비하여 하위에 속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

아가보의 예언 사례(행 21:11)는 그루뎀 논리의 사활을 건 이슈가 된다.  아가보가 사소하지만 유오한 예언을 했다는 해석이 과연 타당한가?  아가보는 그 전에 천하에 흉년이 들 예언을 “성령으로” 말하였고 이 예언은 글라우디오 때 성취되었다 (행 11:27, 28).  바울에 관한 예언이나 흉년 예언 모두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였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결박될 것이란 예언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된 사건을 두고 베드로는 유대인의 소행으로 보고 있으나(행 5:30) 사실은 로마 병사들이 처형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두고 베드로 말이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아가보가 예언 할 때 “성령이 말씀하시되”란 표현은 존중되어야 한다.  성령께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바울이 아가보의 위험  경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의무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Ellen G. White, The Acts of the Apostles(Mountain View, CA: Pacific Press Publishing Assn., 1911), 397.

여행을 계속한 것은 별개의 사항이 된다.

먼저 하던 이를 방해하지 말고 침묵할 것을 명한 것은(고전 14:29) 예언의 상하 등급을 매기는 근거가 될 수 없다.  문맥을 보면 은사는 예언자의 제재 하에 있었고 이교도의 엑스타시한 은사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울은 단순히 예언자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면 기다릴 줄 아는 질서를 지키고 제재도 받아야 된다는 것을 진술하고 있다.  두 세 사람이 이미 예언하였다면 또 예언하고 싶은 자는 다음 집회 시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다른 이들”의 분변(고전 14:29) 문제에 있어서 “다른 이들”은 다른 예언자들이거나 분변의 은사를 지닌 자들이다. 거짓 예언자 등장으로 교회가 시끄러우므로 피차가 분변해야 한다. 동  문맥은 참 예언자가 거짓 예언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초기교회에서 미혹의 영을 받은 거짓 예언자가 참 예언을 할 수 있느냐가 중심적인 문제가 되었다 (요일 4:1-6).

“예언도 폐하고”(고전 13:8-10)라고 한 것은 인간 구원이 완성되는 때에 그들을 지도하여 오던 예언적 은사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동 은사가 불완전하여 폐지된다는 뜻이 아니다.  또 “온전한 것이 올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신자들의 구속이 완성되는 때로 인간이 지닌 지식은 신적 진리의 광휘에 삼켜질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바울은 여기서 “우리”란 말을 사용하여 예언자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31; 14:4, 5, 39에서 회중 개개인 모두에게 방언의 은사나 예언의 은사를 추구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명하고 있는 것은 전체 회중이 몸을 세울 더 큰 은사를 추구하라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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