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라도 만나 감사의 인사 전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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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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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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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스 치료하고 사할린으로 떠난 에리코, 황스베따 모녀
에리코 씨는 어머니 황스베따 집사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병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두 시간 가까이 물리치료를 받고 오는 길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에리코 씨의 얼굴에서 그간의 혹독했던 병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병원에서 받는 마지막 치료인 셈”이라며 “막상 집에 간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고 웃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이 어린아이마냥 천진스러웠다.
오후 4시. 사할린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고 싶다”는 짧은 인사와 함께 집에서 만나자는 약속이 부부의 정과 함께 더욱 애틋하게 들려왔다.
자신의 아내가 한때 사경을 헤매던 것을 알기에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도 기쁨에 젖어 있었다.
에리코 씨의 할머니인 김영봉 집사도 “기쁜 소식을 들으니 한없이 감사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김영봉 할머니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최초로 침례 받은 사할린 동포. 일제시대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 지금까지 평생을 살아왔다.
“빨리 나아서 걷고 싶다”며 혼잣말을 되뇌던 에리코 씨의 얼굴에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모처럼 화색이 돌았다.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빨리 만나고 싶다”며 미소 짓는 모녀는 이전 그 어느 때보다 표정도 밝고 웃음도 많았다.
실제로 에리코 씨는 한때 패혈증 3기 진단까지 받아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생명을 의지한 채 생사의 문턱을 드나들 만큼 위독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간농양과 장기염증 증세까지 겹치는 등 합병증으로 인해 거동조차 불편한 적도 있었다.
또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40도까지 오르는 고열로 의식을 잃어 의료진으로부터 “최악의 상황까지 마음에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피부이식 수술 뒤에는 정상적인 생착을 위해 2주일 동안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는 고통도 견뎌내야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사할린 가족들의 사진을 보면서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고통을 참아냈다.
에리코 씨는 그토록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자신의 손을 잡고 함께 눈물 흘리며 기도해 주었던 어머니와 의료진의 헌신적인 봉사를 결코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던 시간들이 이제는 마치 꿈처럼 아련하게 그녀의 뇌리를 스쳐 지나는 듯 했다.
다음날 오전 6시.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서대두 목사를 비롯한 서울위생병원 관계자들과 김형렬 목사 등 지인들의 따뜻한 환송을 받으며 서울위생병원을 나서는 모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평안했다.
공항에 도착하는 1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이들은 “이제야 집에 가는 실감이 난다”며 “꿈만 같다”고 웃음 지었다.
최민호 선교사 가족과 함께 유즈노사할린스크 공항으로 떠나는 아시아나항공 576편에 몸을 실은 에리코 씨와 어머니 황스베따 집사는 “생면부지의 우리를 기꺼이 도와주시고 사랑으로 기도해 주신 한국 성도들의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우리는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에리코 씨는 “그렇게 많은 분들이 저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 주셔서 너무 감사한다”며 “이제 완쾌되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딸이 되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황스베타 집사는 “너무나 큰 사랑을 받고 가게 되어 여간 송구스러운 게 아니”라면서 “이번에는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신 분들을 앞으로 하늘나라에서라도 꼭 만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할린교회의 최민호 선교사는 “선뜻 예수님의 모본을 보여주신 한국의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고 인사하며 “사할린지역의 고려인과 한인선교를 위해 앞으로도 더욱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출국장을 나서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이들의 얼굴에서 행복과 감사가 끊임없이 교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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