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위생병원 ‘왕 언니’의 러브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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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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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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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과 은퇴한 김인순 씨에게 사랑의 보금자리 기증
이날 기증식은 서울위생병원 영양과에서 24년 동안 근무하다 지난해 정년퇴임한 김인순 씨의 보금자리를 마련, 전달하는 자리였다.
새 보금자리를 선물 받은 김 씨는 전쟁고아이자, 정상적인 일상생활은커녕 본인의 나이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정신지체2급 장애인이다.
그녀는 1970년대 후반까지 류제한 박사의 부인인 류은혜 여사가 돌보던 ‘성육원’에서 생활했다. 한때 외국인 양부모를 만나 입양되기도 했지만, 정신장애를 갖고 있던 터라 생활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이런 그녀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차례 교육을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번번이 실패했고, 이후 김 씨는 병원 영양과에서 조리 보조와 잡무 등의 일을 하며 생활해 왔다.
하지만 가족도 없고, 변변한 친척도 없는 그녀로서는 지난해 은퇴 이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딱한 처지에 놓였다. 병원에서는 그런 김 씨를 위해 2,000여 만원의 자금을 들여 원내 자투리땅에 이처럼 그녀만의 새 거처를 마련해 준 것이다.
병원에서는 일명 ‘왕언니’로 통하는 그녀의 둥지는 서울위생병원 본관과 삼육간호보건대학 사이의 좁다란 오솔길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 크진 않지만 언뜻 보아도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예쁘고 아담한 아름다운 집이다.
10여평 남짓한 원룸형 방안에는 싱크대와 식탁, 냉장고, 텔레비전, 에어콘, 침대 등 세간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한쪽에는 안락의자도 마련되어 있어 피곤한 심신을 편히 쉴 수 있을 듯 하다.
그간 낡고 불편한 숙소를 전전하다 난생 처음 자신의 공간을 갖게 된 김 씨의 얼굴에선 요즘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새 집의 모든 것이 다 맘에 든다”는 그녀는 며칠 전 주변에서 꺾어온 들꽃으로 꽃꽂이도 해 두었다.
이런 왕언니를 바라보는 동료들도 저마다 흐뭇한 표정이다. 한 직원은 “언니에게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그녀의 행복한 표정을 보노라면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도 같이 행복해진다”고 활짝 웃었다.
하지만, 김 씨에게 이처럼 집을 마련해 주기까지 병원 측의 고민도 많았다고.
실제로 병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몇 해 전부터 그녀의 은퇴 이후 생활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사이 그녀를 전문요양시설이나 양로원으로 보내야 한다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김 씨가 지금까지 자신의 능력을 다해 최선껏 일해오던 영양과가 그녀의 생활 전반을 돌보기로 약속하고, 재무과에서 재정을 지원하는 등 공동관리를 통해 그녀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병원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평생을 이곳에서 살던 김 씨가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적응한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고, 본인 역시 그러한 점을 두려워 해 여생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지금도 자신이 몸담아 왔던 조리실에 나가 양파나 파를 다듬는 일을 거들고 있다. 어려운 일은 못하지만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열심히 일손을 보탤 생각이다.
오후에는 산책도 하고, 이웃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오랜만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김 씨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짧게 답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요즘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미소 짓는 그녀의 선한 눈망울에 ‘오갈 데 없게 된 가여운 노인을 위해 이렇게 예쁜 집을 선물해 주어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가 쓰여 있는 듯 했다.
손에 잡힐 듯 살랑이며 볼 끝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이 이날따라 유독 보드랍게 느껴졌다.
한편, 서울위생병원은 28일 오전과 오후 각각 개원 97주년 기념예배와 본관 리모델링 2차 완공기념예배를 갖고 새로운 발전을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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