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시신 앞에 손잡은 세계의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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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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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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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마지막 순간까지 작지만 큰 기적” 평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이 열린 지난 8일 성 베드로 광장에는 약 70여개국의 정상급 지도자 20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진 이날 장례식에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국왕과 여왕, 적어도 70명 이상의 대통령과 총리 등 국가원수와 고위인사 1400여명이 조문단으로 참석했다.
이날 장례식은 마치 세계 최대규모의 정상회의장을 방불케 했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과 이란, 이스라엘과 시리아, 짐바브웨와 영국의 국가수반들이 교황의 추모를 위해 한 자리에 마주선 것이다.
이를 두고 세계의 언론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지막 가는 길 앞에서 세속 권력들이 머리를 숙이고 손을 맞잡았다”고 타전했다.
언론은 “지난 수 년 동안 반목하며 외면해왔던 정치인들이 함께 사랑했던 교황을 잃은 슬픔을 서로 달랬으며, 미국에 의해 이른바 ‘악의 축’ 국가로 지목된 정상들도 부시 대통령과 한자리에 나란히 앉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부시 “교황 장례식 참석은 재임기간의 하이라이트”
이라크 전쟁 등 주요 국제문제를 둘러싸고 사사건건 대립했던 부시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다정하게 악수를 나눴고, 장례식 전후 간간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몇 자리 건너에 앉아있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손에 입을 맞추기까지 했다.
부시 대통령은 장례식후 귀국길에 가진 기내 기자회견에서 “특별한 분을 위한 특별한 행사에 참여한 특별한 순간이었다” 며 “교황 장례식 참석이 나의 대통령 재임기간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히며 영광을 돌렸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과 악수했다. 부시 대통령에 의해 ‘폭정의 전초기지’로 찍힌 짐바브웨의 무가베 대통령은 유럽연합(EU) 으로부터 역내 회원국 여행을 금지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신자로서 교황장례식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유럽땅을 밟았다.
이스라엘, 시리아, 이란 정상이 악수
중동의 원수 사이인 이스라엘과 시리아, 이란의 정상들간 만남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공식적으로 전쟁 중이며, 이스라엘과 이란은 국교단절 상태다. 이스라엘 정상이 이란 정상과 만난 것은 건국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모세 카차브 이스라엘 대통령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과 악수한 뒤 잠시 대화를 나눴다. 중동의 역사적 숙적인 이스라엘과 이란, 시리아 지도자들의 짧은 조우는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레흐 바웬사 폴란드 전 대통령은 지난 10여년 동안 정치적으로 갈등을 빚어왔던 알렉산드르 크바니 예프스키 현 대통령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해 모처럼 다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세계의 언론들은 이를 두고 역사적으로 줄곧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국가들의 정상이 비록 의례적이라고 하더라도 손을 잡는 모습에 놀라움과 기대를 동시에 표시했다.
정상들간 악수와 인사가 정치적 의미가 없는 외교적 제스처에 불과할 지라도 향후 외교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다는 것.
언론은 “평생을 세계평화와 인류애를 위해 바치고 떠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세상 마지막 순간까지 ‘작지만 큰 기적’을 이뤄냈다”고 평가하며 “3시간동안에 불과한 짧은 기적은 교황이 유서에서 그토록 바랐던 진정한 세계평화로 이어지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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