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을 울린 집총거부 재림군인의 최후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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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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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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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이들의 눈물을 알아야 한다...이경훈 재판 스케치
자신의 신앙양심에 따른 집총거부로 구속된 ‘재림군인’ 이경훈 군이 포승줄에 묶인 채 법정에 들어섰다. 헌병들에 이끌려 나오는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곧 방청석에 앉아있던 어머니와 형, 친지들이 눈인사를 건넸다.
법정에는 연합회 군봉사부장 김낙형 목사와 삼육대 오만규 교수, 김은배 교수 등 교단과 학교 관계자 등 10여명의 재림교인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이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었다.
이내 재판장을 비롯한 재판부가 문을 열고 입장했다. 그의 변호를 맡은 차승완 군법무관이 경훈 군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날 경훈 군은 자신 이외 두 명의 피고인들과 함께 법정에 섰다.
오전 10시30분 : “사람의 신앙이나 양심은 같을 수 없습니다” 재판이 시작됐다. 그의 본적, 주민등록번호, 군번 등을 묻는 신상조회와 함께 먼저 검찰의 심문이 이어졌다. 검찰은 그가 ‘살인하지 말찌니라’는 십계명에 의거, 전투요원화 훈련에서 총기수여를 거부하고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한 사실이 있는가를 추궁했다. 그는 이 모든 공소사실 담담하게 인정했다.
곧 변호사의 변론이 이어졌다. 차 변호사는 “이경훈 이병의 집총거부는 군복무 회피가 아니”라며 “그는 부모와 함께 신실한 재림교인으로 살아온 신학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재림교단은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찌니라’는 말씀을 문자상 뿐 아니라 평소 생활에서도 실천하는 평화사상에 바탕을 둔 교회”라면서 경훈 군의 보직변경을 요구했다.
특히, 그가 입대 전부터 집총이 옳지 않다는 개인의 양심에 따라 대체복무를 위한 방위산업체 지원을 하는 등 평화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해 달라며 재판부가 그의 신앙양심을 이해하고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군판사의 심문도 계속됐다. 자신의 종교를 묻는 질문에 그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라며 또박또박 말을 잇는다. 집총명령을 거부한 사실과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도 “성경 말씀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모본에 의거해 총을 잡을 수 없다”며 당당하게 답했다.
군판사는 ‘아버지와 형이 모두 현역 육군 출신이고, 집총을 했는데 왜 굳이 자신만 총기수여를 거부하는가’라며 압박했다. 그는 자신의 집총거부는 교리 때문이 아니라면서 “사람의 신앙이나 양심은 같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이어 자신이 학창시절 배운 지식과 신앙을 하면서 느낀 바는 ‘집총거부가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하며 “나는 그 길을 가려한다”고 잘라 말했다.
검찰은 그에 대한 헌병대의 수사기록일지 등을 증거물로 제출하고, 재판부에 2년형 언도를 요구했다. 변호사도 이 군의 어머니가 쓴 탄원서 등을 참고자료로 제출했다.
오전 10시50분 : 법정을 울린 최후변론
“피고는 최후변론을 하십시오”
법정에 잠시 고요가 흘렀다. 그가 곧 입을 열었다.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하늘나라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모두 같은 신앙을 갖고 있다면 이러한 갈등도 없겠지만, 서로의 신앙이 다르다보니 이런 갈등이 표출되는 것 같습니다 ...”
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저는 명예로운 이 나라의 군인이자 충실한 신앙인으로 군복무를 하고 싶습니다. 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평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집총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도소에 가야한다면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가겠습니다. 부디, 이 나라와 국가가 양보와 협조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 주길 바랍니다”
그의 신념에 찬 변론에 법정은 잠시 숙연해 졌다. 그러나 흔들림 없던 그의 목소리가 웬일인지 떨려왔다.
“저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에 마지막으로 호소합니다”
그는 조국, 대한민국을 어머니에 빗대 마음에 담아왔던 이야기를 풀어갔다.
“어머니(대한민국)여, 저는 당신의 아들 이경훈 입니다. 당신의 젊은이들이 개인의 신앙과 양심에 따라 병역의 의무와 국방의 의무를 다하게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높이며, 개인의 양심을 보호하면서 정의와 질서를 높일 수 있는 국가가 되길 바랍니다 ... ...”
그의 최후변론이 마쳐질 즈음, 재판정에는 여기저기에서 눈물샘이 솟았다. 아들의 눈에도, 어머니의 눈에도, 취재수첩을 기록해 가던 기자의 눈가에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국가는 그들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의 의미를 알아야 했다.
오전 11시20분 : 1년6월 실형이 선고되다
합의를 위한 휴정을 마치고 재판이 속개됐다. 판결이 선고되는 순간이다. 잠시 깊은 침묵과 함께 법정에 긴장이 흘렀다. 이내 판사는 징역 1년6월형을 선고했다. 군인신분을 거둘 수 있는 최소한의 형량이다. 선고 이전의 구금기간 36일도 포함됐다. 그러나 다시 군에 복귀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민간교도소에서 복역해야 한다.
선고 이후 재판부는 판결이유에서 “집총거부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 항명죄”라며 “피고의 신앙을 존중하나 현행법상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경훈 군의 눈에서 눈물이 쉽게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교도소 수감이 억울하거나, 복역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여전히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이 나라와 사회가 자신과 같은 젊은이들의 평화적 군복무를 인정하고, 그러한 제도적 길을 마련하는 전향적 판결을 기대했으나, 그 바람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판이 모두 마쳐지자 가족과 일행은 경훈 군에게 달려갔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기도했다.
따사로운 햇살에 반사되어 법정에 흩날리는 먼지 뒤로 “장래희망이 무엇이냐”던 판사의 질문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목사와 선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던 그의 낭랑한 목소리가 스쳐 지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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