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의 현장에서 생명의 요람으로 거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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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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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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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관리센터로 새 단장한 위생병원 舊 본관
이 건물은 지난 1936년 서울위생병원이 현재의 자리에 터를 잡은 이후 약 60여년의 세월을 병원의 역사와 함께 호흡하며, 질고의 세월을 묵묵히 지켜본 시대의 산증인이다. 이 역사는 일제 치하의 억압과 6.25 동란 등 파란만장한 한국의 민족사이자 현대사이기도 하다.
류제한 박사가 병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지어진 이 건물은 위생병원이 이 땅에서 의료선교사업을 시작한 이래 국가와 민족, 이웃과 동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장이 되었다.
그러나, 영욕이 교차한 민족의 근.현대사를 같이한 이 건물은 모진 세월의 풍상과 현대화에 밀려 이제 자신이 지켜봤던 역사의 한 장으로 묵묵히 자리를 비켜주며 ‘생명과 호흡의 출발점’인 산후관리센터로 탈바꿈하게 됐다.
한때 낡고 흉물스런 모습에 헐릴 위기까지 처했던 구 본관은 우리 선열의 숨결이 곳곳에 묻어있는 역사의 현장이자, 시나브로 떠오르는 추억의 명소이기도 하다.
병원장이었던 류제한 박사가 당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주치의 였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 이 건물의 2층 한 켠에 이 전 대통령의 전용 병실이 자리하고 있을 정도였다. 초대 대통령의 기념식수는 지금도 건물 옆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중이던 1951년 류제한 박사에게 피난민을 위해 부산에도 병원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등 재림교회 의료진에 두터운 믿음과 신뢰를 보이기도 했다. 그의 간절한 부탁이 오늘날 부산위생병원이 세워진 또다른 원동력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서울위생병원과 구 본관은 훗날 ‘한국의 톨스토이’라 불리우는 춘원 이광수의 작품 ‘사랑’의 주무대가 되기도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춘옥은 위생병원의 간호사였다. 또 일제 강점기와 헌정 초기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로 활동했던 유석 조병옥 박사와 도산 안창호 선생 등 역사적 인물들이 이 곳을 즐겨 찾았다는 일화 역시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5만원만 있으면 동대문밖 위생병원에서 며칠 쉬고 싶다”며 소박한 바람을 전하기도 했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 석조건물에 머물기를 즐겨했다.
이처럼 개원 이후 한국 현대사와 발걸음을 함께하며, 우리네 일화와 이야기의 배경이 되어왔던 서울위생병원 구 본관은 이제 고고한 역사와 전통 속에 숱한 사연을 남기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 산후관리센터로 거듭났다.
80년대 ‘삼육간호전문대학’의 강의동으로 사용되며, 나이팅게일의 꿈을 키우는 간호사 양성의 요람이 되었던 이 건물이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는 생명의 요람, 최초의 학교로 변모한 셈이다.
많은 이들의 기대와 축복 속에 최신설비와 시스템을 갖추고, 새로운 마음과 시설로 단장한 산후관리센터를 바라보는 병원 직원들은 과거, 질곡의 수난기 등 역사의 발자욱을 민족과 함께 했던 이 곳이 앞으로는 해산의 고통을 참아야 하는 산모들에게 평안한 안식처가 되고, 신생아들에게 덕을 세우는 새 생명의 전당이 되길 기도했다.
하루를 바삐 달려온 햇살이 뉘엿뉘엿 배봉산 자락에 머무를 즈음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과 끊임없는 기도로 후원해 주신 성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산후관리센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는 병원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얼굴에서 새로운 희망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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