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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광풍에 허탈감만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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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mail protected] 입력 2003.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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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억 대박 꿈에 숨죽인 한국 ... 슬립은 휴지로
추첨 이후 당첨금이 당초 기대보다 턱없이 적어지자 시민들은 매우 허탈해하면서 무력감까지 호소하고 있어 전국을 강타한 ‘로또 몸살’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사진기자 김범태
지난 8일(토) 저녁 8시45분. 평온한 주말 저녁 대한민국이 일순 숨을 멈췄다. 1등 850억. 세금을 제하고도 실수령액이 665억원에 이른다는 로또 복권의 추첨 때문에 전국민이 TV브라운관을 주시했다. 대한민국을 월드컵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달구었다는 로또 광풍은 그렇게 13명의 1등 당첨자를 내고 1분30초 만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로또가 남긴 파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게 관련분야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구나 추첨 이후 당첨금이 당초 기대보다 턱없이 적어지자 시민들은 매우 허탈해하면서 무력감까지 호소하고 있어 전국을 강타한 ‘로또 몸살’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행정자치부, 과학기술부, 문화관광부 등 정부 10개 부처가 공동참여하여 발행한 로또는 자신이 원하는 6개의 번호를 OMR카드 방식의 게임슬립에 기재하여 추첨된 당첨번호와 고객이 선택한 번호가 일치하는 기준으로 당첨등위를 결정하는 국내 최초의 잭팟형 게임복권.

특히 구매자가 자신이 원하는 번호를 직접 선택하여 구입할 수 있고, 1등 당첨자가 없는 경우 해당 당첨금이 다음 회차 1등 당첨금으로 이월되며, 추첨일도 판매 마감시까지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더욱이 최근 7, 8회차에 이어 9회차까지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당첨금이 이월되면서 ‘대박꿈’에 사로잡힌 국민들은 저마다 ‘814만5천60분의 1’의 확률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전국은 복권 이상열기에 휩싸였다.

게다가 판매량에 따라 당첨금이 결정되는 독특한 방식 때문에 로또는 일주일 판매액만 총 2600억원을 넘어섰고, 시민들은 당첨만 되면 ‘대한민국 1%’에 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고자 너나 할 것 없이 인근 복권 판매점에 줄을 섰다.

로또의 당첨비법을 알리는 분석안들은 연일 각 인터넷 사이트를 가득 채웠고, 로또족보, 로또점, 로또계, 로또 프로그램까지 고개를 들고 일어섰다. 급기야 빚을 내면서까지 로또 대열에 가담하는 일부 ‘극성팬’까지 나타나는 등 진풍경이 백태를 이루었다. 이처럼 로또 열풍이 태풍을 넘어 광풍에 이르는 등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정부는 부랴부랴 이월 횟수를 2회로 줄이는 등 과열 양상을 막고자 사후약방문에 나섰다.

그러나 로또 광풍이 우리 사회에 남긴 ‘한탕심리의 팽배’와 ‘근로의욕의 저하’는 온전한 노력으로 가치있는 재산축적을 꿈꾸는 대다수 서민들의 힘만 뺐다는 점에서 씁쓸함의 도를 넘어선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부쩍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된 상황에서 ‘대박 신화’는 많은 국민들을 사행심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위험이 커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서천범 소장은 “결국 이같은 천문학적 당첨금은 사행심을 조장, 국민정서를 피폐하게 하고, 한탕심리를 팽배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의 생산성과 근로의욕을 저하시키게 될 것”이라며 사회문화적 악영향을 지적했다.

인터넷 다음 카페에 로또를 비판하는 안티로또 카페(cafe.daum.net/antigamble)를 개설한 ‘로또뿌사’라는 아이디의 운영자는 “소수의 당첨자 몇 명의 돈벼락을 위해 나머지 대다수의 낙첨자들이 받을 허탈함과 인생역전을 꿈꾸다 근로의욕 상실 등 오히려 인생 마이너스 역전하는 걸 누가 보상하느냐”며 로또의 폐해성을 강하게 꼬집었다.

사회 각계 원로들로 구성된 ‘21세기 실버포럼’ 등 시민단체들도 로또의 폐해를 알리고,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는 등 흥분상태로 이어진 로또 열풍을 진정시키기 위한 제도적 방안 수립을 요구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추첨이 끝나자 잠시나마 ‘대박꿈’에 사로잡혔던 시민들은 그 충격과 허탈함에 정신적 공황상태까지 빚고 있는 등 후유증이 크다.

한달 용돈을 모두 털었다는 정원재 씨(31, 충남 천안)는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곧장 800억대 부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더니 이젠 그 꿈이 담겨 있던 슬립이 모두 휴지로 전락했다”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문기 씨(30, 서울 관악구)도 “혹시나 하고 은근히 기대했는데, 만원짜리 한 장 당첨되지 않아 허무하기 그지없다”며 “거금을 투자한 이상 당분간 로또의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에 사는 김재철 씨(31) 역시 “요즘은 자동차번호판이나 심지어는 주민등록증까지 모두 로또 번호와 연관될 만큼 정신력과 판단력이 흐려졌다”며 “이제는 로또증후군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이같은 현상은 재림교인들 사이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몇몇 이용자들은 “불로소득과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진실하고 성실한 인생관을 포기하는 행위라는 지적을 이제야 실감하게 된다”며 “대박의 꿈에 들떠 잠시나마 세상을 동경하게 된 것이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김 모 집사는 “급격한 복권 열풍에 나만 빠져있자니 왠지 손해인 것 같아 뒤늦게 구입했는데 결과는 허망할 뿐”이라며 “마치 꿈을 꾸고 난 듯한 느낌”이라고 손을 내저었다.

자신을 ‘로또’라고 밝힌 한 인터넷 이용자는 재림마을 게시판에 “기대감에 다섯 장을 샀지만 ... 다른 일에 썼더라면 더 유익하고 보람찼을 돈이 허탈하게 휴지로 돌아갔다”면서 “비록 적은 금액일지라도 성실하게 일해 번 돈으로, 가치있게 쓰려한다”고 반성했다.

한편, 이같은 사회적 이상열풍과 교회까지 침투한 복권바람에 대해 淸潭 이란 이름의 네티즌은 재림마을 컬럼에서 “중독성의 유무와 강약을 떠나 복권과 도박은 ‘불로소득’과 ‘일확천금’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줄기”라고 말하고 “복권 한 장에 ‘인생 역전’의 꿈을 담는 허망한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홍역처럼 한반도를 휩쓴 로또 열풍은 어느새 복권도 ‘일종의 도박’이라는 사회적 경계심마저 허물어뜨리고, 법과 제도를 성실하게 지켜온 국민의 가치관을 왜곡하며, ‘한탕주의’에 건전한 근로의욕마저 꺾어버리는 등 사회적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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