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목회사역 접은 전병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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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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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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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생, 목회자 부재교회서 봉사할 터”
지회장으로서의 마지막 공식 업무였던 2003년도 북아태지회 연중회의를 주재하고 회의실을 나서는 그의 얼굴은 다소 흥분되어 보였다. 그간의 목회여정을 마치고 자리를 일어서는 노종의 눈망울에는 홀가분함보다는 회한과 여운이 더 짙어 보였다. 회의에 참석했던 참가자들도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전병덕 목사가 44년간의 목회사역을 접었다. 전 목사는 이날 오후 삼육대 대강당에서 열린 북아태지회장 이.취임식으로 모든 업무를 마무리지었다. 지난 2월 26일(수) 열린 지회 소행정위원회에서 전격 은퇴를 선언한 이후 정확히 78일 만이다.
이날의 은퇴예배는 그간 지회 문서관리자로 봉사했던 부인 정정희(66세) 사모의 은퇴식과도 겸해 열렸다. 전 목사 부부는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잠시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이제까지 자신의 발걸음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며 ‘초야’로 돌아간 전 목사는 이임사에서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교회를 사랑했고,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가 시키는 일을 사랑했다”며 자신의 목회여정을 반추했다.
전 목사는 “25년간 줄곧 최고 행정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친구들이 제게 서운히 생각하며 등을 돌린 일은 심히 가슴 아픈 일이었다”며 마음에 담아 두었던 고뇌를 전하기도 했다.
이날 삼육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은 헌신적인 목회자로서 영혼 구원 사업에 남긴 뚜렷한 발자취와 행정가로서 교회 사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그에게 명예 박사학위(Doctor of Divinity)를 수여했다.
1983년부터 87년까지 한국연합회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그는 임기 중 한국교회를 아시아 최초의 자양 연합회로 성장시켰으며, 이후 원동지회와 아태지회, 북아태지회 등 세 지회를 관할했던 현직 지회장 중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전 목사는 은퇴 이후 서울 근교에 머물며 가족과 함께 여생을 보낼 계획이다. “그간 못했던 독서나 자연과 벗하면서 남은 시간을 내면의 삶이 여무는 생애로 만들고 싶다”고 밝힌 전 목사는 “합회의 배려에 따라 목회자가 없는 작은 교회에서 부분적인 목회 봉사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 전병덕 목사 일문일답 ***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은퇴예배에 앞서 자신의 집기가 모두 정리된 지회장실에서 재림마을 뉴스센터와 마지막 공식 인터뷰를 가진 전병덕 전 북아태지회장은 “막상 집무실을 나서려니 보람과 아쉬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 그렇지만 은퇴를 결심한 것은 잘한 결정이라 생각된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전병덕 전 북아태지회장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Q. 이제 정말 은퇴하게 됐다. 44년간의 목회사역을 마치고 떠나는 감회가 남다를텐데...
- 44년이 4년 같이 지났다. 마치 야곱이 라헬을 사랑해서, 7년을 봉사하면서도 그것이 수일같이 지났다고 한 것처럼, ‘언제 44년이 지났나...’ 싶다. 이 교회의 사역과 내게 맡겨진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일했고, 사랑해서 봉사했기 때문에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간 것 같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 여러 가지가 많이 있지만 우선 부족한 사람이 세계 교회 일부의 총지도자가 됐다는 것에 무거운 중압감을 느꼈고, 보람도 느꼈다. 또한 여러 문화와 인종과 개인차를 가진 세계 각 국의 사람들과 함께 협력해서 일 했다는 것이 큰 보람이다. ‘사슴의 동산’을 구입하고, 개방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Q. 북아태지회의 창설 지회장이었는데...
- 이 지회를 둘로 나눈 것은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를 내가 먼저 냈고, 대총회도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협의하면서 공감했다. 그래서 이야기가 시작된 지 10개월 만에, 아주 짧은 시일임에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완결됐다.
결과적으로 이 일은 양쪽 지회를 위해 모두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다양한 격차가 어느 정도는 장점이고 미덕이 되지만, 너무 격차가 심하고 덩치가 크면 일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회를 분할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그렇고, 앞으로 시간이 지나 회상해도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지난 7년간의 결과도 아주 좋았다. 앞으로도 좋은 결과가 나타나리라 기대하고 바란다.
Q. 삼육대학교와 신학전문대학원으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받게 됐는데...
- 모교에 기여한 것도 없는데, 귀한 영예를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미 때는 지났지만 모교를 위해 앞으로 좀 더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1955년에 입학을 했는데, 그 당시 삼육대학교는 지금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아주 열악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국내에서도 아주 유수한 대학으로 발전했다. 뿌듯한 일이다. 교회내에서도 학생수나 모든 면에서 교단내 세계 제일의 학교가 되고, 뛰어난 학교로 성장한 것에 대해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고맙기 그지없다.
Q. 가족들에게 특히 고마울 것 같은데...
- 집사람(정정희 사모)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동안 일에만 열중하느라 가정을 등한히 하고, 자상한 아빠, 좋은 남편이 되지 못했다. 특히 아내에게 미안하다.
잦은 출장에 집을 비울 때가 많았고, 유학 가느라 2년 동안 떨어져 살았다. 지난 10년 남짓 지회장을 하는 동안에는 1년 중 거의 절반 가량을 집을 떠나 있었다. 올해로 결혼 한지 43년째인데, 최소한 7년은 빼야한다고 가끔 농담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또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애정을 주고 더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진실하게 자라 교회에 나름대로 봉사하며 살아줘 고맙게 생각한다.
Q. 한국의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감사하다는 말씀 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 나는 참으로 한국 재림교회에 빚을 많이 진 사람이다. 한국교회는 내게 있어 어머니 같은 존재다. 나를 새로 낳게 해주시고, 입혀주시고, 가르쳐주시고 계속 신앙 안에서 성장하게 해 이렇게 과분한 직책까지 주셨다.
나는 한국교회에 영원한 빚을 진 사람이고, 또 마음속 깊이 그것을 간직하고 있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와 성원과 때때로 좋은 조언을 주시고, 좋은 책망까지 주셨다. 감당하기 힘든, 벅찬 직책이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더 잘 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없다.
한국 재림교회는 우리 지회의 힘이다. 한국교회의 선교에 대한 정열과 교회에 대한 헌신, 재정적 헌신, 시간의 헌신 등은 북아태지회의 커다란 힘이 된다. 한국교회의 이런 힘과 좋은 모본이 그간 행정을 하는데 있어 큰 뒷받침이 되었고, 원군이 됐었다. 한국교회에 정말 감사드리고, 한국교회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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