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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건의 내러티브 리포트] ‘호남선교 1번지’ 나주교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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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건 기자 [email protected] 입력 2024.06.0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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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읍성 고샅길의 거점’ ... 어두운 역사 속 가장 빛났던 공동체
호남지방에서 제일 먼저 복음의 등불을 밝힌 나주교회는 종교적 의미뿐 아니라 역사적 사료로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사진출처 = 나주시 홈페이지)

나주교회가 선교 110주년을 맞았습니다. 호남지방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재림교회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금명학원과 본량의숙을 세워 교육계몽운동을 주도하는 등 민족운동의 산실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특별한 역사는 <나주독립운동사>에도 기록돼 있습니다. 


한국 재림교회에서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역사의 흔적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교회라는 점도 매우 의미있습니다. 나주교회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옛 건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나주의 대표적 관광지인 ‘나주읍성 고샅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료로서의 높은 가치를 지녔음에도 지역 문화재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풀어야 할 과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내러티브 리포트’를 통해 그 가능성을 들여다봅니다. - 편집자 주 - 


어쩌면 여행은 준비하는 과정이 가장 설렐 수도 있다. 여행지를 정하고 그 지역의 맛집과 볼거리를 알아보는 순간,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주 하면 언뜻 제일 먼저 곰탕이 떠오를 것이다. 나주시 홈페이지에도 나주곰탕을 대표 먹거리로 소개하고 있다. 구도심에 위치한 국밥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은 그 역사가 1910년까지 올라간다. 그 때문인지 인근에는 나주고샅길을 비롯해 다양한 볼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나주시는 이 고샅길을 동부길과 서부길로 나눠 도보 또는 자전거로 돌아볼 수 있게 안내한다.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도시’라는 슬로건답게 금성관, 나주목문화관, (구)나주극장 등 고려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전라남도를 품에 안았던 흔적이 시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고샅길의 다양한 거점을 살피던 중 다소 독특한 관광지가 눈에 띄었다. <재림신문> 독자라면 더더욱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다. 단지 설레는 정도였던 가슴이 이젠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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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시 홈페이지 캡처


주인공은 호남합회 나주교회(담임목사 박석봉)다. 나주시는 “일제강점기 당시 나주의 예수재림교회는 어렵던 시절, 종교가 가진 역할로의 순기능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재림교회의 초창기 모습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당시의 활약상을 전하고 있다. 다음은 나주시 홈페이지에 게재된 소개 글 중 요약.


“1904년, 손흥조, 임기반 등의 인물이 일본인에 의해 전도를 받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시작됐다. 호남지방에서 재림교회가 제일 먼저 지어진 곳은 나주이다. <나주독립운동사>에 따르면 ‘1920년 가을 제칠일안식일교회가 전도를 목적으로 북문통에 천막을 치고 전도 강연을 시작했으며 200여 명으로 교인이 증가하자 교인의 자녀교육을 목적으로 미국인 오벽 목사가 2년제의 금명학원을 설립했다. 1922년 나주 유지들의 의연금 1600여 원으로 교실을 새로 건축, 4월에는 본량의숙을 개학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나주의 재림교회는 어렵고 힘들던 시절, 종교가 가진 역할로의 순기능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나라를 잃고 변해버린 세상에 맞서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배움이 필요했다. 1943년, 한국 재림교회는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으나 해방 후 재건하여 구호활동, 복지사업 등을 추진했다”


지금은 나주혁신도시가 들어서고 교회가 위치한 구도심은 다소 쇠퇴해가는 모습. 하지만 선교를 시작하던 즈음에는 나주를 넘어 전라남도의 중심지였다. 교회 바로 앞에 큰 우시장이 위치해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곳에 하나님께서 복음의 등대를 세우시고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기간을 밝히게 하셨다.


마침 나주교회는 올해로 설립 110주년을 맞았다. 따라서 오는 가을 기념예배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오랜 세월만큼 세대를 아우르며 전해지는 추억도 많다. 교회는 1960년대까지 야학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공부한 많은 이가 손주들에게 배움의 기억을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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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교회를 찾는 이들은 단지 나주시민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인터넷을 열고 포털사이트에 ‘나주재림교회’를 검색하면, 일반인들의 나주교회 탐방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탐방기 대부분은 옛 모습을 간직한 교회의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함께 일제강점기 나주교회의 활약상을 접하고는 숙연해지는 게 보통이다.

 

이처럼 ‘나주교회 탐방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골목을 따라 걸으며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는 ‘나주읍성 고샅길’이 마련된 까닭이며, 나주교회가 옛 건물을 허물지 않고 여전히 보존하고 있는 덕이다. 교회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나주읍성 고샅길 중 도보 여행자를 위한 서부길에 속해 있다. 지도를 따라 길을 걷다 보면 ‘목사내아 금학헌’과 ‘최부와 양부자 집터’ 사이에서 만날 수 있다.

 

1914년에 세워져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도 옛 모습을 간직한 채 고고히 서 있다. 그 자체로 보는 이들에게 뭉클한 여운과 감동을 선사한다. 나주시 관계자는 “초기의 형태가 100% 유지된 것은 아니지만, 당시 모습을 대부분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고 일제강점기 당시 교육계몽운동을 주도하는 등 민족운동의 산실로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나주교회가 아직 지역의 문화재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하지만 나주읍성 고샅길의 한 부분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나주시 홈페이지에도 관광지로 소개되고 있는 점. 그리고 나주시로부터 역사적 사료로서 그리고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산실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을 봤을 때, 나주교회는 지역 문화재로서 인정받을 공산이 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책상에서의 조사는 한계가 있다. 선교 110주년을 맞은 나주교회가 지역의 문화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들여다보기 위해 버스표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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