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마 상처 속 놀라운 보호의 섭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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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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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08.0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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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양 엘림요양원 이창구 장로 가족 지킨 기이한 손길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 자신들을 보호하신 하나님의 놀랍고 기이한 손길이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 희문, 희성 씨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석문동 계곡 끝자락에 호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건 전날부터. 시간당 70mm가 넘는 폭우는 시커먼 흙탕물을 내뿜으며 금방이라도 이 장로의 요양원을 집어삼킬 듯 계곡을 무섭게 휘감고 있었다.
빗발치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는 이틀간 350mm가 넘는 기록적인 집중호우를 퍼부었다. 급류에 쓸려 굴러가는 바위가 서로 부딪히는 굉음은 마치 거대한 자연의 비명처럼 들려왔다.
창문너머로 바라본 계곡은 이미 평소의 그것이 아니었다. 2m 너비의 개울은 10배는 족히 넘어 보일만큼 거칠게 돌변해 있었고, 범람한 물길은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쳤다.
하늘이 구멍이라도 난 듯 쉬지 않고 쏟아지는 폭우는 어느새 요양원 건물의 중간까지 빗물이 차오르게 했다. 언제 붕괴될지 모를 긴박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급기야 앞마당에 황토로 지었던 별실이 급류에 힘없이 무너져 내리며 형체도 없이 떠내려갔다.
이 장로의 가족들은 줄기차게 내리는 하늘의 빗줄기를 바라보며 ‘이제 그만 비를 그치게 해 달라’고 연신 기도만 할 뿐이었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빗물을 퍼내며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밤 12시30쯤. 갑자기 집 뒤편에서 ‘우르릉 쾅’하는 소리가 들렸다. 산사태가 난 것이었다. 순간, 아이들과 다 죽겠다 싶었다. 94세 노모와 3살배기 손자들 때문에 피신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서서히 동이 터 올랐다. 조심스레 집주변을 살피러 나간 큰아들 희문 씨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다. 밤사이 뒷산이 산사태로 무너져 내리면서 떠밀려온 토사와 나무들이 자연제방이 되어 자신들의 집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벌목공이 깎아놓은 듯 차곡차곡 쌓인 나무들은 요양원 뒤편의 벽이 되어 거센 물줄기의 유입을 막아주고 있었다. 산사태로 보일러실이 매몰되고, 토사물이 조금 쌓이긴 했지만, 만약 불어난 계곡물이 덮쳤다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장로와 가족들은 그제야 하나님이 자신들을 보호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목조주택인 요양원과 가옥은 모두 휩쓸려 떠내려갔을지도 모른다. 안식일 아침예배를 드리고 나니 비는 잦아들고, 무섭게 휘몰아치던 거센 급류의 물길도 바뀌어 있었다.
이후로 사흘밤낮을 잠을 자지 못한 채 가족들이 교대로 불침번을 서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했던 이들은 그날을 떠올리며 “아직도 그 밤을 어떻게 지새웠는지 정신이 아득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 이외에는 어떠한 설명도 설득력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 장로의 가족들은 이번 호우로 콩, 옥수수, 감자 등 무공해로 재배하던 2500평 규모의 채소밭이 완전 자갈밭으로 변했다. 상류에서 쓸어내려온 토사와 바위더미가 산머루를 재배하던 비닐하우스를 덮치면서 시설물의 약 80%가 유실됐다. 토사물을 제거하더라도 올해 농사는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이웃해 살고 있는 양승태, 승순 장로 형제의 집도 산에서 밀려온 진흙으로 현관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이들은 “그나마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당분간 복구는 엄두를 낼 형편이 못된다. 앞으로 집중호우가 몇 차례 더 올수도 있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계곡에 제방부터 쌓는 일이 급하기 때문이다. 큰 비가 오더라도 물길이 집을 덮치지 않도록 둑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밭이나 가옥을 보수하는 일은 그 다음 일이다.
다행히 닷새 만에 길이 뚫려 고립되었던 애당리 마을에도 군인과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닿았다. 이날도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등 중장비를 동원한 긴급복구반과 20여명의 군인들이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까지 전기를 공급하는 전신주가 모두 부러져 전기가 들어오려면 한동안 시일이 걸릴 듯하다. 지금은 자가발전기로 겨우 필요한 양의 전기만 사용하고 있다. 전화라도 개통되어 외부와 연락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음식과 식수는 헬기로 긴급 공수되어 온 구호품과 생필품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 장로는 “15년 동안 이곳에 살면서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개울이 넘친 적이 없어 안전지대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 세상에 안전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처럼 안전지대란 집을 어떤 곳에, 얼마나 튼튼하게 짓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산 교훈으로 체험한 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이 장로의 가족들과 헤어지며 석문동 계곡을 나서는 길. 동행했던 춘양교회 김태수 목사가 복구 장비를 다시 손에 쥐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힘냅시다!”라는 인사를 건넸다.
이마에 주름을 깊게 패이게 한 시름이야 어쩔 수 없었지만, 차창 밖으로 비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서겠다는 재기의 의지가 읽혔다. 어느새 푸근한 미소가 그들의 눈가에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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