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수 목사 묘소 포천재림공원묘지로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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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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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06.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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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후 강단에서 순직 ... “죽도록 충성하려는 믿음으로 살아야”
충청합회와 고인을 추모하는 지인들은 지난 4일 그간 충북 진천시 일반묘원에 안장되어 있던 고인의 묘소를 포천재림공원묘원으로 이장했다.
1915년 1월 20일 강원도 철원군에서 태어난 고 황학수 목사는 18세 때 김명길 목사의 전도회에 참석하여 세천사의 기별을 듣고 침례를 받았다. 부모의 반대에도 굳게 신앙생활을 유지하던 고인은 1939년 중한대회에서 문서전도를 시작으로 복음사역의 길에 들어섰다.
6.25 동란 중 제주도로 피난하여 문서전도를 하면서 1953년에는 모슬포교회와 제주시교회를 돌보았으며, 1955년 목회교역자로 정식 채용되어 여수교회에서 목양을 시작했다. 이후 호남대회 출판부장과 군산교회, 전주교회, 충주교회 등에서 영혼구원사업에 정열을 바쳤다.
1970년 진천교회로 부름 받아 봉사하던 중 11월 21일 안식일 ‘가난한 자를 돌보시는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한 후 폐회기도를 하던 중 강단에서 쓰러져 55세의 젊은 나이로 순직했다.
갑자기 닥친 슬픔이었지만 당시 진천교회 성도들은 정성을 다해 고인을 진천공동묘지에 안장했다. 이후 1975년 4월 이 일대의 개발로 황 목사의 묘소는 인근 진천-사석간 국유지의 한 양지바른 곳으로 이장되었으며, 지금까지 진천교회가 돌보아왔다.
충청합회는 지난 3월 안면도연수원에서 열린 목회자협의회에서 “죽음이 우리를 엄습한다 할지라도 단을 지키는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산 교훈이 필요하다”는 직산중앙교회 황의선 목사의 제안에 따라 추진위원회와 자문위원단을 구성하고 이장을 위한 후속작업을 펼쳐왔다.
55세 젊은 나이로 순직 ... 표석은 삼육대박물관으로
고인의 후손과 교단 관계자 등 80여명이 자리한 가운데 열린 이장예배에서 충청합회장 염시열 목사는 설교를 통해 “고인은 평생을 부활과 재림의 소망으로 살다 주 안에서 잠들었다”며 “우리 모두 고인과 같은 믿음과 소망 속에 살다 재림을 맞이하자”고 권면했다.
염 목사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13절~18절 말씀을 인용한 이날 설교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원한다”며 “우리 모두가 고인처럼 ‘문자적’으로 주님의 명령을 실천할 수는 없더라도 죽도록 충성하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동중한합회장 엄보석 목사는 조사에서 “고인은 평생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며, 남을 존중하고 희생하며 용서하고 양심적으로 겸허하게 살았다”면서 “고인의 이름은 세상의 묘비에 새겨질 이름뿐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될 이름”이라고 추모했다.
호남합회 김가일 원로목사는 회고사에서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생전 열정적이고 영감적인 설교로 많은 은혜를 받았다”면서 “재림의 아침에 만나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목사님처럼 열심히 주님의 오심을 전하며 살자”고 강조했다.
앞선 파묘예배에서 충청합회 임병성 목사는 히브리서 11장13절 말씀을 인용한 설교를 통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강림하실 때 사망의 쏘는 권세가 깨어지고 죽은 의인과 살아 있는 의인 모두에 영생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대하게 될 것”이라며 “고인의 모본처럼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귀감을 남기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고인의 무남독녀인 황효성 여사와 사위 강대곤 은퇴목사는 일시 귀국, 부친의 묘소이장을 위해 애써준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종씨 후손 신학생을 위한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한편, 그간 고인의 묘소를 지키던 표석은 삼육대박물관으로 옮겨져 후학과 관람객 등 믿음의 후사들에게 숭고한 교훈과 귀감을 주는 영적 유산으로 전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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