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 한 달째 맞은 분당 샘물교회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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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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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08.1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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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자, 김지나 씨 생환 ... 희비 엇갈린 가족대책위 하루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위치한 샘물교회. 이날은 지난달 19일 이 교회 봉사단원들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칸다하르로 봉사활동을 가던 도중 가즈니주 카라바그 지구에서 피랍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특히 탈레반 무장세력에게 납치됐다 풀려난 김경자 씨와 김지나 씨가 억류 한 달 만에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오는 날이기도 했다. 석방된 지 나흘 만의 귀국이자, 이번에 피랍된 단원들 중 최초 석방자들이기에 세간의 눈길은 온통 이곳으로 쏠려있었다.
교회 앞에는 각 방송사의 중계차와 신문사 보도차량 등 언론사의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하 1층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는 사건 발생 이후 계속 상주하며 시시각각 현장의 소식을 타전하는 기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마다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교회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이곳의 일상을 대신 말해주는 듯 했다. 피랍자 가족들은 별도의 장소에 모여 언론보도를 주시했지만, 기자들과 개별접촉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신중하고 조심스런 모습이었다.
피랍자가족모임대책회의실 옆에서는 가족모임 대표 차성민 씨가 몇몇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날 오후 귀국하는 두 김 씨의 가족들은 공항에 따로 마중을 나가지 않고 병원으로 옮겨진 뒤 재회할 계획이라는 설명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생환자들에 대한 환영과 함께, 나머지 피랍자들에 대한 우려가 교차하고 있었다.
오전 10시 ... 차성민 대표 등 피랍자 가족 공항으로
나머지 피랍자 가족들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대책회의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외부인의 출입은 철저하게 차단됐다. 가족들은 이곳에서 텔레비전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간간이 눈에 띄는 가족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표정은 어두웠고, 오랜 긴장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차성민 대표가 급히 프레스센터를 찾았다. 당초 육체적,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생환자들의 건강을 위해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하지 않으려던 계획이 외교부와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 귀국 인터뷰 자제를 요청하기 위해 떠난다는 설명이었다.
피랍자가족대표위 사무실에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그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만약 기자회견이 이루어지면 두 사람이 큰 혼란을 겪을 것이며, 이는 앞으로의 치료과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문의의 소견에 따른 것”이라고 부연했다.
당초 공항에 마중을 나가지 않으려던 계획도 바꾸어 김경자 씨의 오빠 경식 씨와 김지나 씨의 오빠 지웅 씨, 그리고 가족모임 대표인 자신이 동행한다고 밝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현장을 찾는 기자들의 수도 많아졌다.
오전 11시 ... 피랍자 무사석방 기원 특별기도회
2층 본당에서 노인들을 위한 실버예배와 피랍자들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특별기도회가 약 200명의 신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됐다. “환난 중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시는 손길을 기억하자”는 설교자의 호소가 마음에 와 닿았다.
같은 시각, 지하 1층 식당의 주방에서는 식사를 준비하는 교인들의 손길이 바삐 오갔다. 이 교회가 매주 금요일 지역사회 독거노인들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사랑의 도시락’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샘물교회 교인들은 “걱정이 많지만, 여러분이 힘쓰고 노력하고 있으므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2명이 석방되었으므로, 나머지 19명도 반드시 건강하게 돌아올 것이라 확신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같은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봉사단원들은 주로 청년이기 때문에 잘 모른다”며 “사태가 어서 빨리 해결되기를 함께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몇몇 신도들은 인터뷰 도중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교회 곳곳에는 ‘함께 기도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기도요청문이 눈에 띄었다. 아프간의 평화와 피랍자들의 조속한 귀환, 그리고 분쟁과 빈곤으로 고통 받는 지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샘물교회는 아프간봉사단 피랍 직후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대책위는 지금까지 공동기도문 작성과 매일 두 차례씩 특별기도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각종 국내외 언론과의 인터뷰 및 UCC를 통한 동영상 송출, 관계 국가의 국내주재 대사관 방문지원 등 피랍자들의 석방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샘물교회는 지난 1998년 10월 서울영동교회에서 네 번째로 개척한 분립교회로 교회의 존재목적이 ‘모든 족속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처음 설립 당시 200여명의 교인들로 시작했던 교회는 현재 약 4,000명의 교인이 출석하는 중형교회로 성장했다.
12시 20분 ... 김경자, 김지나 씨 꿈에 그리던 고국 품에
김경자, 김지나 씨를 태운 아시아나항공 768편이 도착 예정시각보다 20여분 늦은 오후 12시20분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두 김 씨의 입국이 가까워지면서 피랍가족비상대책위원회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시선이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피랍생활의 악몽을 뒤로한 채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들은 전날 오후 아프간 카불을 출발해 뉴델리 인디라간디국제공항에 도착했으며, 별도의 입출국 절차를 밟지 않고 공항내 환승구역에 머물다 이날 오전 4시50분 귀국길에 올랐다. 고 배형규 목사 등 일행 18명과 함께 출국한 지 35일 만이다.
몇 분 뒤, 김경자 씨와 김지나 씨의 모습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피곤하고 지친 모습이었다. 얼굴과 눈이 붓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귀국 비행기를 타기 직전 봉사단의 인솔자였던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씨의 피살 소식을 접한 이들은 정신적 충격과 슬픔에 내내 표정이 어두웠다.
서로에 의지해 계류장을 빠져 나온 이들은 귀국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고, 남은 인질들이 모두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지(死地)에서 돌아온 여동생들을 두 오빠가 안아 주자 이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곧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국방부 소속 구급차를 타고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국군수도병원으로 향했다. 피랍자가족사무실에 있던 이들의 부모들도 별도의 차량을 이용해 병원으로 이동할 것이란 이야기가 누군가에게서 전해졌다.
오후 1시 ... 생환자 가족들 안도와 한숨 교차하며 감격의 눈물
이들의 부모는 두 사람의 입국장면을 피랍자가족모임 사무실에서 텔레비전으로 지켜봤다. 다른 가족을 공항으로 보내고 이곳에 남아 있던 김경자 씨의 부모와 김지나 씨 어머니는 딸의 입국 소식이 긴급 타전되자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김경자 씨의 어머니 박선녀 씨는 딸의 귀국모습이 화면에 나타나자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딸의 얼굴을 애타게 바라보던 김지나 씨의 어머니 선연자 씨도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나머지 10여명의 가족들도 이들에게 “고생했다”고 격려하며 축하의 박수와 인사를 건넸다. 비교적 건강한 모습의 두 김 씨를 바라보며 가족들은 남은 19명도 생환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다시 쥐었다.
오후 1시 45분 ... 외부인 출입 철저히 통제된 분당 국군수도병원
인근 분당 국군수도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김 씨가 이곳으로 옮겨져 안정을 취하고, 치료를 받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곳에는 아랍계 방송인 알자지라 등 국내외 언론사 취재진 40여명이 벌써부터 진을 치고 있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를 구급차를 기다리는 사이, 군 관계자로부터 정보를 캐내기 위한 기자들의 취재경쟁이 시작됐다. 하지만 상부의 지시를 이유로 취재진의 출입은 물론, “이곳에서의 모든 절차는 외교부가 전담할 것”이라며 “현재로선 국방부가 나서 상황을 브리핑할 계획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외부와의 정보 차단을 지시한 듯 했다.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하느라 위병소에서는 출입차량에 대한 검문이 심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오후 2시쯤 두 딸을 만나기 위해 박선녀 씨와 선연자 씨가 국군수도병원으로 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후 2시 15분 ... 두 김 씨 태운 구급차 병원으로
두 사람을 태운 구급차가 빠른 속도로 국군수도병원 정문을 통과했다. 5분 뒤 가족들이 탄 25인승 미니버스도 병원에 들어섰다. 두 사람은 병원 7층 영관급 병실에 입원해 정밀 건강검진을 받았다. 7층 병실은 VIP실로 평소에도 일반병동 병사들과 접촉이 차단돼 있다.
이들이 이처럼 민간병원이 아닌 군병원으로 옮겨진 이유는 외부와의 접촉을 막기 위해. 이들의 말 한마디가 현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이들의 억류생활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아직 인질로 잡혀 있는 나머지 19명의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인질 사태가 끝날 때까지 두 김 씨의 외부 접촉을 엄격히 통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당국의 특별보호 속에 이들은 가족과의 접촉도 최소한으로 제한된다. 이들을 만난 가족들은 두 여성의 건강이 우려했던 것보다는 좋아 보였다고 전했다.
오후 3시 ... 대표단-탈레반 직접 협상 진전 없어 사태 장기화 조짐
다시 샘물교회 피랍자가족모임대책회의실로 이동했다. 교회는 오전에 자원봉사 활동에 참가했던 교인들도 모두 돌아가고 다소 한산해진 모습이었다. 프레스센터에는 몇몇 기자들이 남아 인터넷으로 뉴스 생중계를 보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우리 대표단과 탈레반의 직접 협상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해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언론은 “탈레반이 가즈니시 적신월사를 떠나면서 앞으로 대면협상을 계속할 지 여부를 지도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닷새 만에 재개됐던 양 측 대면협상이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 못한 채 3시간 만에 끝났다”고 전했다.
피랍자가족모임 사무실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여전히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간간이 교회 관계자들이 찬송가나 음식을 전해주기 위해 사무실을 출입했지만, 가족들의 움직임은 없었다. 사무실 안에는 몇몇 교인들이 이들을 위로해 주기 위해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피랍자 가족들의 피 말리는 시간은 계속되었다.
이윽고 김경자, 김지나 씨 오빠와 함께 공항에 마중을 나갔던 피랍자 가족대표 차성민 씨가 모습을 나타냈다. 차 씨는 “두 사람을 만나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건강한 모습이어서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차 씨는 “피랍 한 달 만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 돌아온 2명을 보니 누나 생각에 눈물이 났다”면서 “우리 정부와 탈레반이 협상을 하고 있어 나머지 피랍자들도 안전하게 돌아올 것으로 믿고 차분히 기다리고 있다”며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요청했다.
오후 5시 ... 피랍자 가족들, 희망은 보이지만 극도의 긴장상태 계속
이처럼 2명이 생환하게 됐지만, 아직도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나머지 19명의 가족들은 여전히 불안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더욱이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가족을 만나게 될 것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이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가족들이 살얼음판을 걷듯 하루하루 긴장과 불안감 속에 지내고 있어 건강상태도 좋지 않은 상태. 장기간 육체적 피로가 누적된 데다 극도의 긴장상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족들의 건강상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일부 가족은 계속되는 충격으로 탈진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했다. 대부분이 소화불량과 불면증, 우울증 등의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가족들은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아랍에미리트, 인도네시아, 이집트 등 이슬람권 국가 대사관을 차례로 방문하면서 인질 석방을 호소했으며, 지금까지 4편을 만든 UCC 제작배포를 계속하는 등 구명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방침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이 한국인을 억류하고 있고, 사실상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협상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피랍자가족모임 사무실을 나서는 길,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샘물교회 건물을 바라보며 “풀려난 두 명을 시작으로 남은 피랍자들에 대한 무사 석방소식도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면서 “우리 정부가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하루빨리 사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태의 장기화 조짐을 예견하는 보도 속에 안도와 아쉬움이 교차하고, 생환의 희비가 엇갈렸던 샘물교회 피랍자가족모임대책회의실의 하루는 또 그렇게 답답함과 안타까움 속에 저물어가고 있었다. 찜통더위는 여전히 가실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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