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현대판 ‘아브라함’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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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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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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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합회 영동 지내리교회 故 남훈 장로의 생애
교회에 나가지 않는 비신자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고인은 지난 18일 충북 영동군 학산면 자택에서 향년 95세를 일기로 눈감은 故 남훈 장로.
그의 장례식이 열리던 날 한 지인은 고인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며 “영동의 아브라함이 주님의 품안에 잠들었다”고 읊조렸다. 실로 그는 영동 뿐 아니라, 충청합회의 ‘믿음의 조상’과 같은 존재였다.
고인은 70여년의 신앙생활동안 곳곳에 세천사의 기별을 전파하며,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그가 인도한 사람 중에 3명이 현재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고, 많은 영혼들이 장로와 집사로 각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다.
자손 중에도 목회자가 3명, 장로가 4명, 삼육학교 교사가 4명이다. 신학을 마치고 목회를 준비하는 손자는 오늘도 할아버지의 길을 따르려 준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영동교회를 비롯한 인근의 지역교회들이 복음의 등대를 세울 수 있게 됐다.
한국 재림교회는 고인의 이같은 열정적 선교정신을 기리며 선교 90주년과 100주년 기념식에서 표창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석관에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글귀가
1912년 4월 27일 이곳 지내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28년 11월 장영순 집사와 결혼해 슬하에 2남5녀의 자녀를 두었다.
1936년 만주로 가기 위해 대전 측량학교에 입학해 공부하던 중 대전 효동에 위치한 남선대회 천막전도회에서 원륜상 목사의 복음이 담긴 설교에 감동을 받아 재림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듬해 김항모 목사로부터 침례를 받은 고인은 만주행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남선대회 출판부의 도움으로 문서전도 활동을 펼치기도 했던 그는 1948년 한약사 시험에 합격해 활천당한약방을 열었다. 고인은 이곳에서 당시 생활형편이 어려운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해주며 의료선교 사업을 펼쳤다.
그러던 중 6.25 동란이 발생, 신앙을 한다는 이유로 사살자 명단 1호에 올라 갖은 고초를 당했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해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경상도와 충청도 사이의 유일한 집회소였던 지내리에서 피난민과 교인들을 정성껏 보살피기도 했다.
전쟁 후 가정교회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도하던 중 1957년 교회건축을 시작해 이듬해 성전을 헌당했다. 1960년 장로안수를 받은 고인은 열성적인 선교활동을 통해 교회를 성장시키고, 청년들을 훈련시켜 영동교회와 호탄교회, 죽촌교회 등 인근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는 데 크게 헌신했다.
고인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힘으로 걸을 수만 있다면 교회에 출석했으며, 돋보기에 의지해 틈만 나면 성경을 읽었다. 특히 교회에 개인용 스피커를 설치해 놓고 어두워진 귀를 밝혀 말씀을 듣는 열성을 보였다.
자신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그는 “십자가의 예수님, 승천하시는 예수님,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기 원한다”며 노구를 이끌고 성화를 구하기 위해 기독교서점을 두루 찾아다녔으며, 그토록 꿈에도 열망하던 재림의 모습을 그림으로나마 보며 눈을 감았다.
1년 전부터 기도와 성경만 읽으면서 살아왔던 고인은 지인들에게 “저는 이제 죽을 준비를 하렵니다”라고 말하며 부활의 순간, 예수님을 영광 중에 맞이할 준비를 마치고 조용히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20년 전 본인이 직접 만들어 놓은 무덤에 편히 누웠다. 그가 잠들어 있는 석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주의 품에 잠드나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자료제공 - 충청합회 영동교회 염시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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