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신안 암태도 주민을 향한 ‘행복으로의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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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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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3.1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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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전도단, 암태교회에서 무료진료, 이미용 등 선교봉사 나래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잿빛하늘과 마주한 수평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의 끝에서 송공항에 맞닿았다.
그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암태도로 들어가야 한다. 아뿔싸! 너무 여유를 부렸던 탓일까. 오전 10시 배를 간발의 차로 놓쳤다. ‘부웅~’ 기적과 함께 등을 돌리고 떠나는 페리호가 야속하기만 하다. 난감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다행히 30분 후 출발하는 팔금고산행 배를 타면 된단다. 비 내리는 자그마한 항구에 덩그러니 남아 초행길 배를 기다리는 것도 낯선 경험이다.
이윽고 스피커에서 승선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뿌연 안개를 가르고 다시 뱃길로 30분을 달렸다. 신안농협페리 7호는 그렇게 기자를 암태도의 어느 자락에 내려놓았다.
섬 내에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암태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예로부터 섬사람들의 기질이 바위를 닮아 단결도 바위처럼 굳건한 고장이란다. 어깨를 마주한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등 인근 섬들과도 어울려 얘깃거리와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선착장에서 자동차로 약 20분을 달려 암태교회에 도착했다. 20명 남짓한 성도들이 힘겹게 복음의 등불을 밝히고 있는 예배소다. 호남합회 평신도들로 이뤄진 바울전도단(단장 김영무)은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이곳에서 ‘암태주민을 위한 건강과 행복 초청회’라는 제목으로 전도봉사 활동을 펼쳤다.
마을 가장자리 둔덕 위에 자리 잡은 교회가 아담하고 정겹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매캐한 향내가 코끝을 자극했다. 4개의 간이베드에는 ‘환자’들이 누워 저마다 치료를 받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승주 원장의 손길이 바빠졌다. 영암 기찬한의원 원장인 그는 이번에 가족과 함께 참여했다. 고급 약재는 물론, 초음파치료기까지 손수 챙겨왔다. 전문가가 함께 하니 더욱 든든하다.
평소 무릎관절염으로 고생했다는 한 할머니는 “마을에서 병원도 멀고, 이런 치료를 받으려면 큰 맘 먹고 가야 하는데, 이렇게 무료로 봉사해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평생 거친 파도와 싸웠던 팔순의 할아버지도, 농사일에 시달렸던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도 오랜 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어깨를 펼 수 없을 만큼 딱딱하게 굳어 있던 환부가 단박에 풀린 것 같아 여간 시원한 게 아니란다. 뜸을 뜨고, 약침을 맞고, 부항을 뜨자 “벌써 다 나은 기분”이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장 권영호 씨는 “우리 마을에 이렇게 의료봉사가 온 건 처음이다. 이렇게 외진 곳까지 직접 와서 의술을 펼쳐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나도 이틀 동안 침을 맞았는데, 선생님이 치료를 참 잘 하신다. 허준 같은 명의”라며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대기석에는 10여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혈압을 체크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건강상담을 해줬다. 반대편에서는 어깨마사지와 목마사지가 한창이다. 성경을 공부하는 이도 눈에 띄었다. 따뜻한 차를 준비해 대접하는 손길이 분주하게 오갔다. 주민들의 표정에서 지루함보다는 설렘이, 통증보다는 행복이 묻어났다. 오랜 순서를 기다리는 것도 그리 싫지 않은 듯했다.
그 시각, 교회에서 300미터 떨어진 마을노인정에서는 이미용 서비스가 한창이었다. 단원들은 커트와 염색을 “서비스”했다. 지저분했던 긴 머리를 깔끔하게 자른 한 노인이 이리저리 거울을 돌려보며 흡족한 듯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가 “아따~ 멋쟁이가 되어 부렀네”라며 가벼운 농을 건넨다.
오후에는 신기리 마을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날은 하필이면 올 들어 비가 제일 많이 내리는 궂은 날씨였다. 남부지방에는 마치 여름비처럼 하루 종일 주룩주룩 심술을 부렸다. 바람을 타고 빗방울이 우산 사이를 파고들어 신발이며 바짓가랑이가 금세 젖었다. 우산을 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그 시각, 김영무 장로와 박성수 장로는 처마 밑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칼갈이 봉사에 한창이었다. 소식을 듣고 벌써 10여명의 이웃이 무딘 칼을 들고 줄을 섰다. 주방기구는 물론, 낫이며 호미며 농기구도 보인다. 이제 곧 농번기가 시작돼 일손이 바빠지는 시기, 이들의 봉사는 농민들에게 쏠쏠한 도움이 된다.
이번 봉사대에는 약 20명의 단원이 참여했다. 보성과 강진 등 인접 지역부터 광주, 남원 등 호남 전역에서 모였다. 한방 무료진료와 미용봉사 외에도 물리치료, 칼갈이, 방충망 교체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올해는 처음으로 장수사진 촬영도 했다. 그 자체로 TMI(Total Member Involvement)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운동력이 되었다. 이들의 수고로 연인원 200여명의 주민이 도움을 받았다.
30년 간 뉴스타트요양원을 운영했던 박성수 장로는 아침저녁으로 건강기별을 선포했다. 개인적으로 15년 전부터 암태 지역에 관심을 갖고, 수시로 봉사를 왔던 그다. 이번에도 교회를 찾아 밀려드는 주민들에게 틈이 날 때마다 말씀을 가르치며, 영의 양식을 제공했다. 아직은 성경공부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과 영생의 소망을 나누며 오히려 자신이 더 많은 은혜를 받았다며 미소 짓는다.
교회가 위치한 와촌리는 40여 가구 60명 남짓한 주민이 모여 사는 두메마을이다. 대부분 홀로 사는 노인 가구다. 발마사지를 받던 한 주민은 “봉사단이 올 때 마다 큰 도움을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날씨가 좋을 땐 집수리를 해 줄 때도 있다. 자식들도 이렇게 못한다. 우리에게 누가 이렇게 큰 사랑을 베풀어 주겠는가. 주민들이 무척 좋아하고, 감사해한다”고 귀띔했다.
바울전도단이 이곳을 찾은 건 벌써 3년째다. 이번에는 교회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마을로 내려가면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는 하겠지만, 교회와의 연계성은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은 다소 적더라도 교회의 문턱을 넘게 하려 장소를 이렇게 택했다.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전도와 직접 연결하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단원들은 교회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때론 식사도 걸러 가며 주민들을 맞이해야 했고, 딱딱한 바닥에 매트리스 한 장 깔고 잠을 청해야 했다. 하지만 예수님께 거저 받은 것을 거저 나누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불편을 감수했다. 주민들은 그런 단원들이 고맙다며 떡과 과일을 준비했다. 식사 때가 되면 손수 담근 김치와 갖은 반찬을 갖다 주기도 했다.
화순 한천교회에서 왔다는 한 여집사는 ‘피곤하지 않냐’는 질문에 “내 죄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가시면류관을 쓰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의 수고는 한낱 아무 것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혜를 나눠야 한다. 내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건 이 작은 봉사와 전도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염색 파트를 맡은 김종례 집사(화순 동산교회)는 “힘들지만, 단원들과 함께 봉사하는 일이 참 재밌다. 부족하나마 나의 손길을 통해 이웃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으니 보람차다.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면 피곤이 싹 가신다. 수혜자들이 복음에 관심을 갖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어느덧 굵게 내리던 빗방울이 그쳤다. 아침처럼 배 시간에 늦지 않으려 채비를 서두른다. 다시 꼬박 8시간을 달려 서울까지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손이 되어 봉사하는 이들을 생각하면 그 길도 전혀 피곤할 것 같지 않다. 빗물을 한껏 머금고 교회 앞 뜰에 핀 동백꽃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오른다. 저 멀리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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