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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청년, 길을 묻다 - 김신섭 교수 편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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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mail protected] 입력 2019.04.1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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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사랑의 통로 되어야 ... 진정한 ‘안식일 정신’ 회복 절실”
김신섭 교수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위로와 격려, 용기를 주는 진정한 ‘안식일 정신의 회복’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 전편 이어 - ▲ 저희가 현실적인 상처와 고민에 맞닿아 있다 보면 가끔 ‘교회가 과연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물음에 저희는 어떻게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누군가 나를 사랑해준다는 걸 느끼게 되면 자연적으로 희망이 생깁니다. 희망은 다른 사람이 내게 주기도 하지만, 내가 스스로 창조를 할 수도 있어요. 물론, 내가 타인에게 희망을 먼저 줄 수도 있죠.

‘교회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라고 불평과 불만이 쌓이다 보면 앞서 언급했던 감정은행 계좌가 자동적으로 떨어지게 돼지요.

‘비록 교회와 사람들은 나를 실망시켰지만, 나는 오히려 교회에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의 주체가 되어 보세요.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하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작은 일부터 실천해 보세요. 평소보다 교회에 조금만 더 일찍 가서 주보를 나눠준다든지, 청소를 한다든지 봉사를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희망이 생기게 되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사랑이 전염되듯, 희망도 전염이 됩니다. 나의 작은 변화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희망을 보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불평과 불만 대신에 희망을 갖게 되겠죠.

▲ 그 연장선에서 저희는 종종 “희망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라는 말씀을 듣곤 하는데요. 하지만 결국 일을 같이 해 나가는 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희망을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조화와 통합은 무엇일까요?
- 그 말은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에요.(웃음) 사실 나도 이 말에 대해 그동안 나름대로 무척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 실망을 겪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성경에서 사랑에 대해서 가장 좋은 강력한 메시지를 주신 분이 사도 요한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의 변화된 성품이 잘 나타나 있죠. 그는 본래 ‘우레의 아들’이라면 별명이 있을 만큼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었어요. 모르긴 몰라도 아주 급하고, 화를 잘 내고, 이기적인 성격이었을 거예요. 예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했던 모습을 볼 수 있지요. 그랬던 요한이 완전히 변화되어 ‘사랑의 사도’가 되었어요.

그가 쓴 요한일서에 보면 ‘사랑하자’는 말이 무척 많이 강조돼요. 그 중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보이는 형제를 사랑한다”는 게 가장 중요한 핵심이잖아요?

결국 사랑한다는 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이뤄지죠. 사실 성경 전체의 메시지가 ‘사랑’으로 함축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네 목숨과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이 부분을 명확하게 짚으셨어요. 이것이 온 선지자와 율법의 강령이에요. 강령은 기둥이라는 말이죠. 결국 성경의 두 기둥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건 거짓말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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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그분을 대표하는 권한을 위임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바로 부모님, 남편, 선생님, 목사님, 지도자들이에요.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사랑의 권한을 위임하셨습니다. 남 편은 아내에게, 부모는 자식에게, 선생님은 학생에게, 목사는 성도에게, 지도자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품성을 반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뭘 보여줘야 하나요?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줘야죠.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청소년들에게 무언가의 길을 제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기성세대가 먼저 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걸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리 청소년들에게 ‘너희가 희망이다’ ‘너희는 교회의 미래다’라고 말해도 청소년들에게는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죠.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표하는 어른들이 먼저 청소년들에게 사랑을 보여줘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결국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줘야 합니다. 서로 하나가 되고, 사랑할 때 우리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겁니다.

▲ “비아냥과 절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저항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라는 한 칼럼니스트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과연 저희 재림교회는 이러한 한국사회와 현대의 청년세대에게 어떤 가치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 세빈 양도 사춘기를 보냈죠? 그때 감정이 어땠어요?

(저는 솔직히 그렇게 심하게 겪진 않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주변에서 많이 힘들어 하는 친구들을 봤어요)

- 그러면 그 친구들이 왜 그랬을까요? 왜 갈등하고, 반항했던 것 같아요?

(음... 글쎄요? 아무래도 세대 갈등? 부모님이나 선생님들과 서로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 그렇죠? 어른들의 말씀이 자신들과 맞지 않는 거예요. 자신이 생각할 때 ‘이건 아닌데?’라고 여겨지는데, 계속 강요를 하니까 저항하는 거죠. 결국엔 ‘나 이제 교회 안 나가!’까지 되는 거고. 그러면 어른들은 당황하고 어찌할 바 몰라 상담을 요청하기도 하죠.

청소년들이 저항할 때는 ‘우리도 할 말이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어른들의 말씀에 무조건 맹종하고, 자기 소리도 못 내고, 시키는 대로만 따라하는 사람이 되는 건 사실 어른들도 원치 않을 겁니다. 때때로 원치 않는 상황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있을 때는 저항하고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일부 어른들은 그걸 ‘불순종 한다’ 혹은 ‘불손하다’고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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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중요합니다. 청소년들의 그런 행동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볼 게 아니라, 왜 그럴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최근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는 ‘코칭’(coaching)이에요. 코칭의 반대는 티칭(teaching)입니다. 상대방에게 계속 강요하고 명령하는 게 티칭이라면, 코칭은 내가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질문하며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유도하는 기법입니다.  

오늘날 교회나 가정의 청소년 문제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갈등 대부분을 여기서 찾을 수 있어요. 티칭으로 강요하니까 다 싫어하는 겁니다. 아무런 자율권이나 선택권이 없는 거죠.

세빈 양이 사춘기를 비교적 심하게 겪지 않고 잘 보냈다는 말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부모님과의 갈등이 적었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부모님께서 세빈 양의 의견을 존중해 주신 거죠. 반대로 갈등과 문제가 많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부모님과 말이 안 통한다는 거예요. 아무리 자신들의 입장을 이야기해도 계속 일방적인 강요만 한다는 거죠.

이제는 코칭을 해야 합니다. 상대에게 지시하지 말고, 질문해야 해요. 예를 들어 자녀에게 무언가를 시켰는데, 아이가 싫다고 거부할 수도 있잖아요. 그때 버럭 화를 내거나 일방적으로 지시하지 말고, “그럼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니?”라고 의견을 물어야 합니다. 질문을 하면 뭐가 좋고 뭐가 싫은지,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까 소통을 할 수 있고, 오해를 줄일 수 있죠. 그러면 불필요한 갈등도 일어나지 않게 되고.

상대방을 중심으로, 그가 원하는 걸 자율권을 갖고 선택하도록 하는 게 코칭의 핵심입니다. 티칭은 자칫하면 억압으로 비춰질 수 있어요. 청소년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News_9161_file4_v.png▲ 현대사회에서 저희가 크리스천, 특히 재림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 재림교인을 일컬어 흔히 ‘안식일 교인’이라고 하죠? 사실 나는 재림교인이라는 말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안식일 교인’이라고 불리는 게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 교인은 ‘안식일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 정신은 뭘까요? 바로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정신’이죠. 힘들어하는 사람을 위로하고, 고통당하는 이웃의 아픔을 치유해 주고,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 그게 바로 ‘안식’을 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안식일교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죠.(웃음)

세상과 가정에서, 인간관계에서 상처 받은 영혼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는 그들을 사랑의 정신을 감싸 안아주고, 편히 쉬게 해 줘야 합니다. 그게 참 안식일교인이며, 안식일교회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교회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편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식이나 복장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사람 중심’이 아니라 ‘규칙 중심’의 문화가 편만해져 있고, 사람 존중보다는 율법 중심의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문화가 매우 짙게 배어있는 것을 봅니다. 원래 율법의 정신은 ‘사랑’인데, 그 본질은 빠져있고 형식만 남았기 때문이죠. ‘무엇을 먹느냐 안 먹느냐?’, ‘안식일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하는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해져 있지 않나 생각이 되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상대를 쉽게 정죄하고 비판하는 분위기에서는 전도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복음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그들에게 매력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위로와 격려, 용기를 주는 진정한 ‘안식일 정신의 회복’이 절실합니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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