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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교회의 군복무관은? ‘비무장 비전투 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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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mail protected] 입력 2019.05.3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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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美 남북전쟁 당시부터 확립 ... 한국에서는 고투의 역사 이어져
재림교회의 ‘비무장 비전투 복무원’ 신념은 교단 창립 시부터 확립됐다. 사진은 기도하는 재림군인의 모습. 특정 기사와 관련 없음.
지난 25일 ‘신념의 자유에 대하여’란 주제로 서울영어학원교회 본당에서 열린 <2019 종교자유 세미나>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 및 비무장 전투요원에 대한 재림교회의 입장을 설명하는 시간이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재림교회의 ‘비무장 비전투 복무원’ 신념은 교단 창립 시부터 확립됐다. 군대소집에 응하되 안식일 훈련 및 무기휴대 근무 및 살상행위는 거부한다는 병역 일부의 거부로 비무장 비전투 복무적 병역거부의 입장을 취했다.

1860년에 미국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이듬해 노예제도와 관련해 발발한 남북전쟁을 계기로 군복무 신념을 체계화했다.

1863년 3월 3일 국민징집 법안이 통과되자 재림교인들도 강제징집 대상에 올랐다. 교단은 군대소집에 응하되 안식일 훈련 및 무기휴대 근무 및 살상행위는 거부한다는 입장을 채택하고 양심적 병역거부로 분류되는 ‘비무장 비전투 복무원’을 공식 천명했다.

그 무렵은 퀘이커교도 등 타 교단의 입법 활동으로 양심적 참전거부자들의 비전투병과 배치 법안이 통과된 시기다. 대총회는 1864년 8월 3일 재림교단의 입장을 미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출했고, 정부로부터 이에 대한 수용을 회신 받아, 그 이후부터 재림교단 소속 교인들은 비무장 비전투 복무원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 정부가 강제징집법안을 시행한 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에서도 재림교단은 비무장 비전투 복무원 입장을 밝혀 소속 교인들이 비무장 비전투 복무원으로 군생활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태평양전쟁에 위생병으로 참전한 데스몬드 도스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자신의 다리에 총상을 입으면서도 75명의 부상병을 구출해 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는 미국 병역법상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분류된 사람이 최초로 받은 무공훈장 사례여서 더욱 값어치 있다.

이같은 재림교단의 군복무관은 미국뿐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 영국 등 다른 국가들에서도 인정받았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1909년 강제병역 법안이 통과되자, 교단이 정부에 비무장 원칙 및 안식일 준수 보장에 관해 청원했고, 해당 국가 정부는 1911년 이를 수용해 연방국방법이 수정된 바 있다. 영국에서는 1916년 의무병제도를 도입하면서 재림교단의 청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의 역사는 지난했다. 공식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피해는 1952년 재림군인 박재식(해병대)과 김인용(제주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의 사례다. 이들은 집총거부로 구타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고, 당시 교단은 군 입대 중인 재림군인 70명을 위해 1953년 6월 30일, 정부에 소속 교인들이 군복무 중 안식일을 준수하고, 비무장 비전투 복무원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줄 것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보냈다.

하지만 이후로도 재림군인들의 시련은 계속됐다. 안식일 준수나 집총거부에 대해 군 내부에서 구타와 훈련유급, 영창 감금이 끊이지 않았다. 1956년에 이르러서는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실형이 선고되기 시작했다. 재림군인 김응호, 박해종, 김창호가 그해 9월, 집총거부로 군사재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았고, 허승희는 6년형을 선고받았다.

교단은 즉각 국방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국방부는 1957년 3월에 되어서야 “국방 총 제2288호”로 재림교인에 대해 토요일 예배행사를 허용하고, 필요한 모든 편리를 도모하며 위생병과 또는 직접 무기를 휴대치 않는 부대에 가급적 배치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회신했다.

이 같은 공문에도 불구하고 군 당국은 재림군인의 안식일 준수 또는 집총거부에 대해 항명죄로 처벌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1950년부터 1976년까지 재림군인 95명이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꺾지 않아 징역 6개월에서 7년까지의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됐다. 그 후 1981년부터 2001년까지 총 8명의 재림군인이 징역 10개월에서 3년까지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오만규 교수(삼육대 신학과)가 <한국 재림교도들의 군복무 역사>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군복무를 앞둔 청년들에게 재림교회의 군복무관을 재각인 시켰다. 2002년 3월 10일 당시 신학생이었던 윤영철이 집총거부로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22명의 소속 교인이 벌금형(예비군 집총거부 포함)에서 1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소식이 알려지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38개 시민단체에서 탄원서와 청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는 등 한때 사회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여호와의 증인은 병역 자체를 거부하므로 일반 검찰 법원에서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되어 외부적으로 쉽게 알 수 있는 반면, 재림교단은 병역의무는 이행하되, 안식일 훈련 근무나 집총을 거부하여 군대 내에서 처벌이 이뤄지므로 군사재판에 회부되거나 실형까지 선고되지 않고도 영창 수감이나 비공식적 처벌의 사례가 매우 많다.

따라서 위에서 밝힌 처벌 사례 외에도 과거 수많은 재림군인이 군복무 중 여러 갈등상황에 직면해 처벌 또는 불이익 등을 받았으며, 현재도 이 같은 어려움이 반복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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