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 ‘불길 속 의인’ 알리 돕는 장선옥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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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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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5.0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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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그럴 것” 겸손 ... “의인을 돕는 또 한 명의 의인” 칭송
알리 씨는 특히 구조과정에서 큰 화상까지 입었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이어서 치료는커녕 변변한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딱한 처지여서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사연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는 알리 씨에게 영주권을 주자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고, LG복지재단은 그의 살신성인 정신을 높이 사 ‘LG 의인상’을 수여했다. 다행히 법무부에서도 체류자격을 기타(G-1)자격으로 변경해 그가 국내에 계속 머물며 온전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알리 씨의 이런 상황이 일반에 전해지고, 그가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이가 있다. 바로 양양제일교회(담임목사 강보화)에 출석하는 장선옥 집사다. 현재 이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인 그는 알리 씨의 사정을 알고 난 후부터 마치 자기 일처럼 팔을 걷고 나서 헌신적으로 돕고 있다.
“이웃에 살았지만, 평소 일면식도 없던 사이입니다. 당시 화재로 인해 우리 집도 연기가 많이 찼고, 저도 어지럼증과 구토로 출근을 못할 정도로 힘들었죠. 옆집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혹시 필요한 게 있을까 해서 알아보려고 갔다가 알리 씨가 집주인에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걸 우연히 들었어요. 그래서 ‘상처를 좀 볼 수 있겠냐’고 물었죠.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너무 끔찍할 정도로 화상이 깊고, 부위가 컸어요. 병원에 갔다가 응급치료만 급히 받고 나온 것 같았어요”
그는 알리 씨에게 “나를 믿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러면 내가 당신과 함께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알리 씨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 집사는 그 길로 직접 차를 몰고 딸 다솜 씨가 인턴으로 근무하는 삼육서울병원으로 향했다. 급하게 연락을 받은 딸도 엄마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병원 응급실에 나와 있었다. 하지만 상처가 너무 심해 화상전문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장 집사는 그곳에서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불법체류자라는 걸 그제야 알았기 때문.
■ 병원에서 뒤늦게 알게 된 불법체류자 신분
당황스러웠지만, 오히려 알리 씨를 안심시켰다. 신분이 탄로나 자칫 추방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알리 씨에게 “지금은 치료가 우선이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어깨를 다독였다. 병원 측은 완강했다. 장 집사는 자신이 신원보증을 할 테니 치료를 해 달라고 사정했다.
‘좋은 일을 한 사람이 이렇게 우리나라를 떠나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혹여 누가 신고하지 않을까 긴장하며 잔뜩 위축돼 있는 알리 씨의 모습이 더욱 측은하게 여겨졌다.
처음엔 병원 이송만 부탁했던 집주인은 진단 내용과 치료비 규모를 듣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 집사는 이때부터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고맙게도 같은 교회 성도들도 기도하며 머리를 맞댔다.
해당 내용을 국민신문고에 올리고,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화재 발생 초기 주민들을 급하게 대피시키고, 구조활동을 한 외국인 노동자가 있다는 사실을 언론에 제보했다. 결국 그의 수고를 통해 알리 씨의 선행은 세상에 알려졌다.
뿐만 아니다. 의료보험이 없는 탓에 700만원이 넘게 나온 치료비를 주변 이웃과 친인척 등 지인들에게 호소해 모금했다. 첫 치료비는 전액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부담했다. 그 사이, 여러 시민사회단체에 직접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가 어떤 신분이든 치료비는 한국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에서였다.
알리 씨의 불법체류 사실을 법무부에 자진 신고하고, 본인은 보증인으로 나섰다. 치료기간을 연장시키기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관련 서류를 제출한 것도 장 집사였다. 이 과정에서 자비를 들여 알리 씨의 귀국행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기도 했다. 이후 양양군에는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알리 씨를 의사상자로 지정해달라는 신청을 냈다. 의사상자는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죽거나 다친 사람(직무자 외)으로, 의상자로 인정되면 보상금과 의료급여 등 예우를 받는다.
“알리 씨에게 ‘신분이 탄로 날 텐데 왜 불 속으로 뛰어 들었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사람은 살려야 하잖아요’라고 대답하더군요. 생명을 구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더구나 한국인들도 발만 동동 구르고 소리만 지르며 감히 화재 현장으로 뛰어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자신에게 앞으로 어떤 해가 닥칠지도 모르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런데도 아무런 치료도 해 주지 않고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 어떤 상황이든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면...
장선옥 집사는 그 순간, 예수님이 떠올랐다고 했다.
“저 같은 죄인에게 구원의 손을 내미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생각났어요. 내가 예수님의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았는데, 그 불쌍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외면한다는 건 그리스도인으로서 도저히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죠. 알리 씨가 끝까지 치료를 잘 받아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모두 회복한 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신앙인으로서 느낀 점도 많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든, 무슨 일이든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면 해결된다는 걸 다시 한 번 체험했다. 비록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갖게 된 것도 소중하다. 인간적 시선으로 자신의 형편을 살피다보면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뼈저린 경험도 했다.
“첫 날 화상전문병원에 갔는데 입원치료비는 하루에 100만원이고, 통원은 비용이 그 절반이라는 거예요. 의료진은 입원을 권유하는데, 저는 당장 돈 걱정부터 하더라고요. 그때 제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 지 깨달았어요.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는 알리 씨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한낱 치료비 때문에 입원을 망설이는 저 자신을 보며 후회하고 회개했습니다”
통원치료를 받던 알리 씨는 얼마 뒤, 환부관리 부주의로 상처가 더 깊어져 3월 30일부터 열흘 동안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장 집사는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실 거”란 확신으로 이번에는 두말 않고, 입원서류에 사인했다. 놀라운 건 예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며 나아가자 모든 일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기적처럼 술술 풀렸다는 점이다.
장 집사는 알리 씨가 퇴원한 후로도 일주일에 세 번씩 서울을 오가며 통원치료를 돕고 있다. 앞으로도 한동안 그래야 한다. 더구나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하고 있어 심리상담까지 받으려면 횟수는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 “나를 왜 돕나요?” ... “내가 믿는 예수님께서 그러라고 하셨어요”
장 집사는 ‘왜 나를 도와 주냐’고 묻던 알리 씨의 목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통원치료를 위해 두 번째 만났던 날이었다.
“불법체류자들은 본인의 신분과 처리에 대해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한국 사람이 자신을 계속 서울까지 데리고 다니며 치료해주니까 의아했나 봐요. 그래서 그랬죠. 내가 믿는 예수님께서 그러라고 하셨다.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새 삶을 살게 하도록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예수님이 이 일에 적극 개입하실 것이다. 그러니 일단 치료를 하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알리 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장 집사는 그때부터 개인적으로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자신의 피곤이나 분주함보다 알리 씨에게 계속 좋은 소식이 들려오는 게 더 좋고 보람 있다고 했다. 그를 돕기 위해 여기저기에서 온정을 보내주는 국민들을 보면서 따뜻함을 느낀다. 인터뷰를 마치며 혹시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코로나 때문에 다들 힘드시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예수님을 더욱 바라봐야 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알리 씨가 어서 빨리 완쾌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그가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금 우리가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그는 아직 하나님에 대해 잘 몰라요”
■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 칭찬 이어져
한편, 장 집사의 미담이 알려지자 관련 기사의 댓글에는 “교육자를 떠나서 한 인간으로서 정말 존경스럽다. 솔직히 외국인 불법체류자에게 저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알리 씨도 고맙고, 장선옥 교감선생님도 고맙다. 우리 사회가 본받아야 할 분들이다. 모두 힘내시고, 행복하길 바란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한 라디오방송 진행자는 인터뷰에서 ‘알리 씨의 상처를 봤다면 누구라도 나처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는 장 집사의 말에 “아니다. 이렇게 나서서 자기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알리 씨는 시민을 도왔고, 선생님은 알리 씨를 도왔다. 정말 감동의 물결”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주위에서도 칭찬이 자자하다. 같은 교회의 김상용 장로는 “아드라나 해외빈민아동을 돕는 시민단체에도 기부를 많이 한다. 꽤 오랫동안 위탁아동 학비를 남 몰래 지원하기도 했다. 구호기금뿐 아니라, 재정이 약한 지역교회의 건축헌금도 여러 번 쾌척했다. 누군가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는 모습을 이제껏 단 한 번도 못 봤다. 수입의 많은 부분을 남을 돕는데 쓴다”고 귀띔했다.
최덕규 장로는 “평소에도 주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주옥 집사는 “교회에서도 궂은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처리한다. 크든 작든 맡겨진 일을 자기 일처럼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다. 본받을 게 참 많다. 이번에도 평상시 하던 대로 했을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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