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재림의 임박과 지연을 통해 본 재림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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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익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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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6.0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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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교회의 할 일이 아직 남았다는 표이자, 은혜의 시기”
김성익 교수(삼육대 신학과)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우리는 재림신앙과 재림교회 그리고 재림성도의 정체성에 대한 숙고를 새롭게 하고 있다. 우리의 뿌리를 확인하는 일은 늘 현재에 대한 이해와 실천에 영향을 미친다. 예수님의 문자적인 재림이 지체되는 것처럼 보이자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복천년이 지상에서 이뤄지고 예수님이 오신다는 사상과 영적 재림에 대한 이설들이다.
이렇게 문자적 재림신앙이 거의 잊혀 갈 무렵인 19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적으로 문자적 임박한 재림에 대한 각성과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재림교회는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 재림신앙에 기초해 세 천사 기별을 온 세상에 전파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1860년 교회를 조직했다. 재림신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종말시대에 출현할 ‘남은 무리’에 두고 그들의 특성을 구현하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릴 뿐 아니라, 예수님이 속히 오실 것이라는 기별을 온 세상에 전하고 있다.
■ 몇 대가 더 지나가야하는가?
사실 많은 초기 재림교인들은 자신의 생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1844년 재림운동의 첫 실망과 대실망 이후 176년이 지나갔다. 1860년 재림교회가 설립된 지 160년이 흘렀다. 재림교회의 영감적인 기별자 엘렌 G. 화잇 여사도 상당기간 자신의 생전에 예수님이 오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그녀가 주안에 잠든 지 105년이 지났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생각한다면 현재 세대는 재림운동의 6세대 혹은 7세대가 될 것이다. 예수님은 몇 세대가 더 지나야 돌아오실까?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약속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재림운동 6-7세대인 오늘의 재림성도들에게 재림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사실 성경과 예언의 신에는 재림의 임박과 지연의 개념이 동시에 나타난다. 이 상반되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우리의 현재 삶에 적용할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 생전에 재림하기를 기다린 성경 속 인물들
구약은 자신의 세대에 구세주 예수께서 초림하시기를 갈망하는 이야기이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첫 아들이 약속된 여인의 후손이기를 기대하며, “내가 주님인 남아를 얻었다”는 고백으로 그 이름을 “가인”(얻음)이라고 지었다. 이후 구약의 매 제사 때마다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은 구세주의 오심을 갈망하였다. 유대인의 모든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이가 메시야가 되기를 소망하였다.
드디어 4000년이 지나 메시야가 오셨다. 지상왕국을 건설하기를 기대한 추종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면서 매우 역설적인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셨다. 그리곤 무화과나무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아직 십자가의 길에 들어서지도 않으셨는데, 부활 승천 이후에 자신이 다시 오실 것임을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태복음 24장 32-34절)
마태복음 24장은 당시 예루살렘의 운명은 세상 종말의 표상으로 표상과 실상이 교차되어 나타난다. 아마도 당시 유대인에게 예루살렘 성전과 성의 몰락은 세상의 최후 심판과 같은 정서적 충격을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사후 39년 이후인 서기 70년에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멸망 이후에 그의 제자들이 자신의 다시 오심의 임박에 대한 성급한 기대를 할 것을 아시고 한계를 그으셨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태복음 24장 36절)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이후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40일을 보내셨다. 승천을 앞둔 시점 지상왕국의 실현을 갈망하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사도행전 1장 6절). 예수님의 대답은 준엄하였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7절).
예수께서 때와 시기에 대해 엄히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부활 승천한 이후에 많은 이들이 재림이 신속히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제자들과 바울을 비롯한 많은 초기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생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목숨 걸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그의 오심을 전하면서 살았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첫 서신에서 자신을 포함한 당시 성도들이 살아서 구원받을 것이라 믿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
사도 바울이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로마서 13장 11장)라고 권면한 것은 이 같은 임박한 재림의 대한 간절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사도 야고보도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야고보서 5장 8절)는 말씀을 통해 재림의 임박함을 강조했다.
예수님의 제자 중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한 사도 요한은 자신의 시대가 종말 시대라고 이해하였다.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한일서 2장 18절).
또한 그가 기록한 요한계시록의 전체에서 7번, 특별히 마지막 장에서 예수님이 친히 약속하신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말씀을 세 번 연속 증언하고 있다(요한계시록 22장 7절, 12절, 20절). 이 말씀에 대한 응답이 신약교회의 구호가 되었다. “마라나타,” 즉 “주님, 오시옵소서.”(고린도전서 16장 22절; 요한계시록 22:20)가 그들이 만날 때마다 나누는 인사였다. 환란과 핍박 가운데서 그들은 속히 오실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며 참고 참고 또 참으며 신속한 재림을 기다렸다. 하지만 2020년 현재 예수님 승천하신지 약 1989년이 지났지만 주님은 오시지 않고 있다.
■ 재림의 지연과 연관된 예수님의 교훈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면서 주님의 재림이 그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와 다르게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거듭 깨어있으라고 강조하신다.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태복음 24장 42-43a절). 44절에서는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후에 세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모두 재림의 지연과 연관이 있다.
1. 두 종의 비유
두 종의 비유에서 착한 종, 즉 충성된 종은 무엇이 달랐는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at the proper time)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태복음 24장 48-51절).
이 비유는 일차적으로 “믿음의 권속”을 돌보는 종교적, 영적 지도자들에게 적용된다. 그들의 의무는 구성원의 영적 필요를 공급하고, 그들을 사명자로 세우기 위해 늘 변함없이 성실히 헌신하는 삶의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오심이 임박했음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증거한다.
불충성된 종은 무엇이 달랐는가?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4:48-51)
불충성한 종은 먼저 “주인이 더디 오리라” 생각했다. 예수님은 그를 “악한 종”이라 지칭한다. 그는 주인이 더디 올 것이라는 믿음을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자신의 생활방식으로 주인의 지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먼저 그는 자신이 섬겨야할 동무들을 때린다. 그는 양을 모으는 목자가 아니라 양을 흩어버리는 삯꾼이다(요한복음 10장 12-13절). 더 나아가 세상 쾌락에 몰두하며 주인의 오심의 임박성을 자신이 섬기는 양에게 무시해도 된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 비유를 통한 예수님의 교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늘 깨어있으라. 둘째, 지체를 의식한 종의 태도는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셋째, 깨어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예수님은 우리에게 맡겨진 일, 즉 세상에 영적 양식을 공급하는 일인데, 주님은 우리가 주님이 언제든 오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일에 전심전력하는 모습을 보기를 원하신다.
2. 열 처녀의 비유
유명한 열 처녀의 비유(마태복음 25정 1-13절)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종말에 신랑이 오심이 기다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연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예언되었다. 지면관계상 다 다룰 수는 없으나 재림운동 역사에서 이 비유는 재림교회의 상황과 연관하여 늘 종말론적인 깊은 함의를 가졌다.
둘째, 두 그룹 다 신랑을 기다렸으나 신랑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일 동안에는 차이가 없다가 신랑이 도착한다고 하자 여분의 기름이 문제가 되었다. 셋째, 성령을 상징하는 기름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기대한 만큼 예수님이 속히 오시지 않을지라도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함을 의미한다.
넷째, 비록 같이 졸기는 했지만 기름을 가진 처녀들은 “성령을 통하여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을 비”추고 있었다(실물교훈, 414). 즉 “낙담한 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해” 주고, “쾌활한 모습과 희망을 주는 말과 친절한 악수”와 “물질로써 궁핍한 자들을 도와주”는 착한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다(417-418).
<실물교훈>에는 미련한 처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계급은 단지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행위만으로 만족하는 자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품성을 연구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지도 아니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쳐다보고 살줄도 모른다. 하나님께 대한 저희의 봉사는 점차 저하되어 형식화 되고 만다”(실물교훈, 412).
이 같은 부류의 교인은 하나님 백성처럼 말씀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는 사람들이다(겔 33:31).
3. 달란트 비유
특별히 “달란트의 비유”는 주인의 오심을 기다리는 종들이 하나님 사업에 이익을 내어야함을 지적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유사한 내용을 담은 “므나의 비유”를 하신 이유를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는 제자들 때문이라고 밝힌 것이다(누가복음 19장 11절).
13절에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는 말은 귀인이 정해지지 않은 기간 동안 나가 있을 것이 예상되었음을 암시한다. 이 표현을 통해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 그의 오심이 지연되고 있다고 느낄 만큼 상당 기간 걸려야 돌아오실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주인이 돌아오느냐가 아니라, 주인이 돌아오기까지의 기간은 주인의 재산을 증식시키기 위해 장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4. 세 비유를 통한 교훈
세 비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종의 비유에서 신실한 종이 주인의 오심을 촉진시키거나 불신실한 종이 주인의 오심을 지연시켰다는 어떠한 암시도 나타나지 않는다. 둘째, 열 처녀의 비유에서 양 그룹의 준비상황이 신랑의 도착시간과 어떠한 상관이 있다는 암시는 없다. 셋째, 달란트의 비유는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이익 증대, 즉 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넷째, 세 비유 다 종말에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못한 자가 공존함을 지적하고 있다. 다섯째, 지연되는 듯이 보이는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언제든 주님이 오실 것이라는 의식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열 처녀 비유의 결론처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태복음 25:13)
■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지체의 개념
요한계시록 6장 10절에는 상징적인 존재인 순교당한 “제단 아래의 영혼들”이 자신들을 옹호하는 최후의 심판의 지체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how long?)라고 울부짖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주어진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계 6:11).
“쉬되”라는 표현은 상징적인 존재인 순교자들이 재림이 오래 지체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초조해진 상태와 대조되는 의미이다. “그 수가 차기까지”는 하나님의 섭리로 어떤 특정한 수가 순교를 당하도록 정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분명하게 확정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게 있다. 선악간의 대쟁투의 최전선에서 순교자들은 사단의 활동 계획의 본질을 입증하여 하나님이 의로우심을 증명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린 자들이다.
따라서 여기서 분명한 것은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는 표현은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고 느끼는 성도들의 인식 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 임박한 재림을 원하는 사람들의 기대보다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 재림의 지체 이유에 대한 여러 이해들
임박한 재림에 대한 예언에 고무되어 재림운동에 참여한 초기 재림성도들은 1844년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그리스도께서 매우 신속하게 오실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19세기의 끝에 이르러도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지 않자, 주께서 “이전에” 오실 수 있었을 것이라고 거듭 숙고하게 되었다.
엘렌 G. 화잇은 그녀의 초기 증언들이 가리키는 것보다 왜 시간이 더 오래 계속되었느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증언이 시사(示唆)한 것보다 시기가 더 연장되는 듯이 보인다고 해서 내가 거짓되다는 비난을 받아야만 옳을 것인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의 증언은 어떠했는가? 그들의 증언도 속이는 것이었는가?”(가려 뽑은 기별, 1권, 67). 그러면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예수님과 사도들이 언급한 임박한 재림을 가리키는 구절들을 인용하고 있다.
그런 후에 자신이 기별을 받은 방식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예언의 조건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인류에게 보내는 저들의 기별을 통해서 때가 심히 가까웠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나에게도 항상 이처럼 기별이 전하여졌던 것이다. 이 기별을 받은 초기에 우리가 기대하였던 것보다 시기가 오래 연장된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 구세주께서 우리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속히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의 말씀이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약속들과 경고들은 꼭 같이 조건적인 것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 하나님의 약속이나 위기에 대한 경고는 다 같이 조건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가려 뽑은 기별, 1권, 67).
이 같은 조건성과 연관된 재림의 지연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복음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예수께서는 종말의 징조를 다루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14절)라고 말씀하셨다. 화잇 여사는 이 말씀을 염두에 두고 재림운동 초기에 이 사명이 완수되었다면 이미 천국에 가 있었을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자비의 기별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 땅에 오셨을 것이며 성도들은 하나님의 도성에서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교회증언, 6권, 450).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체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가려뽑은 기별, 1권, 68)라고 했다.
2. 품성의 완성을 위해
혹자는 요한계시록 7장 1-4절의 “네바람 속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와 14장 1-5절의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인 144,000명과 연관하여 남은 무리의 품성이 완성될 때 주님이 오시는데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지연된다는 설명을 한다.
화잇 여사는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분의 백성들 속에 완전하게 재현될 때에 그분은 당신의 것을 찾으시려고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이다.”(실물교훈, 69)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 등을 인용하여 “마지막 세대론”을 신봉하는 “견고한 토대” 혹은 “생애의 빛”과 같은 단체에 속한 분들은 마지막 세대가 재림 전에 하나님의 품성을 온전히 재현함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고, 우리 삶 속에서 죄 없는 완전한 삶을 증명해야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주장한다. 재림교회가 1888년 미네아폴리스 총회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기별’을 거절하므로 완전한 품성을 형성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지면관계상 완전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한 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완성이 선교적인 실천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그대가 그리스도의 정신 곧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기심 없는 사랑의 정신과 그들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정신을 받아들일 때 … 성령의 열매가 그대의 품성에 무르익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의 믿음이 더욱 굳어지고 그대의 신념이 더욱 확고해져서 그대의 사랑이 온전하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67-68).
<시대의 소망>에서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그분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그분의 사랑을 바라보고 그것을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흡수해 들임으로써이다”(시대의 소망, 389).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계발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의 사업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한다(142). 영혼구원을 해야 “그분의 기쁨, 곧 그분의 희생을 통하여 구속받은 영혼들을 보는 기쁨에 참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품성을 이해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여받게 된 “신의 성품의 모든 완전은 저들의 영혼 구원 사업에 도움이” 되는 선순환을 이루게 된다(827).
3. 좀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재림의 지연 이유로 가장 적게 언급되는 게 바로 영혼구원에 관한 사항이다. 매우 흥미롭게도 우리는 베드로후서에서 영혼구원과 연관해 숫자적인 면을 고려하게 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이 말씀은 은혜의 시기의 끝과 연관해 숙고해야 할 말씀이다. 인간이 구원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게 된 은혜의 시기의 끝과 일정한 한도의 구원받을 자의 수가 제한돼 있지 않을까 하는 추론은 하나님의 전지적인 주권과 연계해 대구를 이룬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화잇 여사도 재림의 지연과 영혼구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비가 그분의 오래 참으심 속에 나타나 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심판을 붙들고 계시면서 경고의 기별이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아, 우리의 백성들이 마지막 자비의 기별을 세상에 전하도록 그들에게 지어진 책임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놀라운 사업이 이루어질 것인가!”(교회증언, 9권, 97).
그런 의미에서 재림의 지연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족이나 친구를 가진 사람에게는 은혜이다. 예수님이 이미 오셨다면 어쩌면 우리 중에 많은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은 구원받을 기회를 상실했을 것이다.
4. ‘죄악의 잔’이 차지 않았다
성경에서 진노의 포도주의 개념과 유사하게 화잇 여사는 ‘죄악의 잔’이 차는 상황과 종말의 지연을 연관시켜 언급하고 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큰 날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지상의 거민들이 그들의 죄악의 잔을 채우기까지 시간은 좀 더 지체될 것이다”(교회증언, 1권, 363).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것과 연관되어있다. “주님의 율법을 완고하게 무시하는 데 대한 진노로 범법자들을 심판할 때를 주께서 정하셨다”(교회증언, 9권, 93).
5.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의 차이
선악간의 우주적 대쟁투의 관점이라는 보다 넓은 하나님의 관점을 우리의 관점에서 지체라고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 55:8)라는 말씀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는 말씀이 이런 설명의 근거가 된다.
사실 화잇 여사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 “별들이 정해진 길을 따라 광대한 궤도를 운행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경륜은 조급하거나 지체하는 법이 없다” (시대의 소망, 32). 그러면서 화잇 여사는 이상 가운데 예수님의 오심의 시간과 일자에 대해 들었다고 진술했다(초기문집, 15). 그러나 이후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말씀하신 그 시기에 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그 시간의 선포를 들었을 따름이며 계시가 끝난 후에 그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서신 38, 1888년).
지체의 개념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고정되어있고 하나님 편에서는 “속히”지만, 그의 우주적 시간이 인간의 시간과 인식의 차이로 인간에게 지체로 보인다는 주장이다.
■ 재림이 임박했다는 표현이 주는 의미
속히 오신다는 말씀에 대해 재림교회 주석에 나타나는 설명을 소개한다. “비록 그리스도의 재림은 어떤 조건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을지라도, 재림이 임박하다고 한 반복적인 성경의 언급은 그들의 세대에서 복음사업을 마쳐야 한다는 도전에 대한 교회의 반응”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에 관해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의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구원의 경륜의 완성을 지연시키기로 결코 의도하신 적이 없었으므로 우리 주님의 재림이 오래 지체되지 않는다는 뜻을 언제나 표현해 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오심이 약 2000 년 지체될 것을 미리 아셨지만, 그분이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에 기별을 보내실 때, 당신의 백성이 하나님의 섭리로는 지체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자 그분은 사건과 관련하여 그분의 뜻과 목적이란 말로 그 기별들을 표현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에 관해 요한계시록이 일곱 번 언급한 것은 조건적으로 설명한 약속처럼 하나님의 뜻과 목적의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사실에서, 신속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도록 권면하는 기별과 실제적인 주의 날이 얼마나 멀리 남았는지를 예언하는 그 시간과의 조화를 분명히 찾아야 한다.”
화잇 여사는 재림이 임박했다는 선포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심판이 가까웠다는 선포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것을 공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선포를 영원한 복음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전도하고 그 재림이 임박했다는 것을 선포하는 일이 복음 기별에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나타내고 있다. … 오늘날에도 그러하다. 사람들은 하나님도 없고 천국도 없고 내세도 없는 것처럼 재물과 이기적 방종을 추구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 …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강림이 임박했다는 기별도 사람들에게 그들이 세상일에 너무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기별이다.”(실물교훈, 227-228)
■ 예언의 신에서 재림의 임박과 지체의 조화
랠프 닐(Ralph F. Neall)은 <엘렌 화잇의 저술에 나타난 파루시아의 임박과 지연>(1982)이라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화잇 여사의 삶속에 재림의 임박과 지연에 대한 사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화잇 여사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고정되어 있고, 재림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일에 실패함으로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는 진술도 하였다.
이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잇 여사의 종말적인 사고가 어떻게 시작하여 발전되어 갔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니엘서의 시간 예언과 요한계시록 14장 6-12절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에 기초한 윌리암 밀러의 예언에 영향을 받아, 그녀는 어린 나이부터 종말론적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 과거의 예언들이 성취되었기에 그리스도의 재림도 신속하게 성취될 것이라는 단순한 확신을 가졌다. 이 같은 임박한 재림에 대한 확신은 그녀로 거룩한 생애를 추구하며 열정적인 복음증거를 하게 만드는 동인이 되었다.
따라서 화잇 여사는 초기 사역동안 매우 강력하게 종말의 임박함을 지속적으로 서술했다. 그러나 생각한 것처럼 빨리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거짓 선지자라는 비평가들의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1883년에 이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예기치 못한 사태 혹은 의외성’(contingency)과 ‘지체’의 개념을 추가하였다. 그녀는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의 과거와 현재의 죄 때문에 지체하신다고 말했다. 그런 후 지체는 그녀의 사고 속에 임박함이 던진 도전과 동일하게 지체도 그녀에게 복음 선교사명에 더욱 전념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다.
화잇의 저술에서 그리스도의 오심의 임박함과 지연은 긴장(tension) 관계로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종말의 시기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고정되어있고, 인간의 관점에서는 지연되고 있다고 제안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그녀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임박과 지연이라는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의 묵시 예언 속에 나타나는 진술을 그대로 병행해서 사용했다. 동일한 강조를 하며 선교적인 삶의 동기로 그리스도의 오심의 임박과 지연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화잇 여사가 종말의 임박이냐 지연이냐 하는 종말의 시간표보다는 종말이 임박하면 임박한데로, 지연된다면 지연되는 이유와 연관해 재림신자는 어떤 윤리적 삶을 살아야하며, 어떤 선교적 실천을 해야 하느냐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참된 재림신자는 재림신학을 사명과 연관지어 이해해야
참된 재림신자는 늘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경과 이경이 지났다. 지금은 삼경에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깨어 있다. 조금만 더 깨어 있으면 된다”(교회증언, 2권, 192).
하지만 명목상 재림신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일경에 우리 주님을 기다렸으나 우리는 실망하였다. 우리는 이경에는 그분이 확실히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그 시간이 지나도 그분은 오시지 않았다. … 그분께서 다음 시간에도 오시지 않을 것이다. … 지금이야말로 세상에서 재물을 모을 때이다. 그래야 궁핍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교회증언, 2권, 192).
참된 재림성도는 재림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인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삼경은 삼중의 열성을 요구한다. … 어두움의 긴 밤은 괴롭히는 것이지만, 자비 때문에 아침이 연기되었다. 왜냐하면 주인이 오신다면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그분의 뜻 때문에 이토록 오래 지체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실한 자들에게 오는 아침과, 불신실한 자들에게 다가오는 밤은 거의 다 이르렀다”(교회증언 2권, 194).
다시 말하면 재림이 지연되었다는 것은 재림교회가 할 일이 남았다는 표이고, 아직 은혜의 시기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있다는 의미이다.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누가복음 19장 13절)는 므나의 비유를 해설하면서 화잇 여사는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예수님]는 그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 주셨는데 그것은 무료하게 기다리는 일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일하면서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었다”(실물교훈, 325).
흥미롭게도 안식일 계명도 제칠일에 쉬기 전에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라”고 말씀하셨다. 재림을 기다리는 것도 내적 준비에 몰두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나님 사업을 하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통해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주님이 다시 오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그 결과를 멸하기 위하여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를 주시고, 그 아들과 더불어 협력하는 길을 통하여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이 비참한 광경에 종지부를 찍고자 하신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교육,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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